어떤 사람이 군중 속을 향해 “사장님”하고 불렀더니 모두가 되돌아보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것은 단편적인 우리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모두가 사장님 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정서를 갖고 있다는 말과 서로 통한다.

서양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횡적(橫的)인 인물평가를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그 사람이 직위가 높은가에 기준을 두고 있는 종적(縱的)인 평가를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부(副)’자를 홀대하는 단 극상의 구조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본관을 따지고, 누구의 몇 대 손임을 가문의 자랑으로 내세우곤 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직업과 직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고 출신학교와 학벌을 유난히 따진다. 또 서열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사회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려는 욕구는 과거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같은 현상은 서양의 경우 다수의 통치자가 평등한 횡적 과두정치(寡頭政治)가 성공한 반면, 우리는 횡적인 과두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데다 횡적인 정치구조가 미숙하고 집단지도체제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데 기인한다.

특히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이 지배를 받아온 한국인의 의식구조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어 횡적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호칭개명을 하자는 주장이 진작부터 있어왔다.

즉, 직종의 잣대가 그 기능과 사회적 쓰여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최고만을 고집하고 차선과 차차선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 의식이 저변에 깔고 있다.

도지사·시장·군수 등의 다음 서열인 부지사·부시장·부군수·부국장·부부장 등 부자는 꽤 높은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별 볼일 없는 자리로 여기고 있다.

하물며 과거 이승만 정권당시 이시영 부통령과 김성수 부통령이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지조보다는 부여된 권한이 없고 홀대받는 한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것은 한국적 부직급자의 처우에 대한 반발이기도하지만 부직급이 그 만큼 선망 받지 못하는 단편적이고 종적인 구조 탓도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기업체에는 ‘술 상무’가 중요한 보직이었다. 이들의 역할도 컸다.

반면 중국에서는 기관이나 기업체의 수장을 대신해 술잔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비우는 술상무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그동안 지자체의 부단체장들은 권한은 고사하고 책임과 의무만 강요당한 채 단체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이를 빗대 “허울만 그럴 듯하지 까놓고 보면 ‘속빈강정’”이라는 부단체장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 많았다.

과거 모 광역단체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던 한 인사는 조직과 단체장을 위해‘해결사’역할을 하면서 술 때문에 몸이 상하고 그 후유증으로 제 수명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 연영석 청주부시장과 김태관 청원부군수, 강길중 단양부군수 등 일부지역 부단체장들이 단체장 체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민선시대 단체장의 막강한 권한과 파워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권한대행이 비록 석달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부직급의 서러움을 털어 내고 행정가로서 두각을 나타낼 호기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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