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란 백만장자룰 유혹하는 숙명적 마력이 있다.’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가 한 말이다. 아마도 언론의 사유화에 대한 비판을 위해 사용한 표현일 것이다. 또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도 언론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할게 아니라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강구할 때’라고 말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언론의 권력화를, 좁게 보면 언론의 사생활 침해를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언론에 대한 이들의 염려가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시중에는 총성과 포연이 안들리고 안보여서 그렇지, 언론의 사유화와 권력화를 놓고 일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언론전쟁’이 그것이다. 소위 ‘’조중동(朝中東)’으로 약칭되는 중앙 메이저 신문들의 행태를 놓고, 언론 사유화의 폐해와 발행부수를 근거로 한 신문의 정치 권력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문제가 어디 이들 신문에만 해당하겠는가만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결코 간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언론을 제4부(第4府)로 부른다.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강조한 데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또 언론을 일러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자정 활동을 북돋우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언론은 ‘밤의 대통령’으로 지칭될만큼 겸손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또 과도한 부수 경쟁과 선정성으로 사회에 부담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왕 벌어진 언론전쟁이 더욱 확전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보다 진실되고 겸허해졌으면 한다. 역사학자 폴 존슨이 이야기하듯이, 이 사회에도 무지의 어둠을 제거하고 오류를 추방하며, 진실을 확립하는 ‘잠재적이며 거대한 세속적 교회’같은 언론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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