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온전히 봄빛으로 풀렸다.

‘강이 풀리면 님이 오겠지….’ 하는 가곡을 몇 소절 흥얼거렸다. 섬진강변 으로 매화를 보러간다는 친구의 상기된 목소리가 은파 처럼 무심천에 일렁인다.

얼마 전 부강 금강변 에서는 소금배, 황포돛대가 떴다. 잠시나마 뱃길이 다시 열리면서 여여한 강상풍경도 다시 열려 행복했다. 강이 곧 길이었던 시절. 그 강물 따라 온갖 풍물과 문화가 오고갔다. 남한강 최고의 내륙항구였던 충주의 목계, 단양 매포의 도담삼봉 나루,그리고 금강 부강 나루에 문의 오가리…. 작고 큰 내륙항구마다 온갖 문물과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강 위에서 배를 타고 바라보는 강변 풍경은 그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구한말 이 한강수로천리를 따라 금강산을 유람했던 세계적인 지리학자 영국인 ‘비숍’여사는 그의 기행문에서 “조선은 신이 마음먹고 만든 이 지구상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나라이다.”라고 적고있다. 또 “매일 크고 작은 범선 75척 이상이 강을 오르내렸는데 특히 남한강 에는 모두 47개소의 나루터가 있었으며 이 나루터 연안마을은 176개였다”고 소상히 이곳 강변 풍경을 전한다.

항구에는 사랑이 있고 풍경이 있고 문화가 있었다. 특히 주변 기름진 강변 들녘과 나루에는 사시사철 구성진 소리들이 끓이지 않았는데 그중, 한강천리 최고의 강변 세레나데로 일컬어지는 ‘도담삼봉 띠뱃노러가 있다.

“못 믿을 건 한양손님 뱃 줄 하나 끊어 노니 기약 없이 떠나가네….”하며 항구의 아낙들이 먼저 소리를 놓으면 한양 마포 선원들은 그 소리를 이렇게 받았다. “어이가나 한양 뱃길 비틀비틀 소금배가. 서러워서 못가겠네….”

한양마포선원들의 서도소리와 정선 뗏목꾼들의 메나리토리가 만나 독특한 형태로 또아리를 틀고 앉았던 그 아름다운 강변소리들. 나는 한때 이 소리가 좋아 1년을 넘게 녹음기를 들고 강변을 누볐다. 이후 소리들은 그곳 강상풍월과 함께 ‘남한강 세레나데, 도담삼봉의 띠뱃소리’라는 재목의 한가위 특집으로 전파를 탈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녹음한 ‘띠뱃소리’ ‘짐배소리’ ‘마수리농요’ ‘용왕제소리’ ‘단양자장갗들은 아직도 내 방송 20년 역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여름 휴가 중 하루는 꼭 그 강변을 간다. 강물같이 큰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그 강변을 간다. 충주 목계나루를 거쳐 단양 영춘의 용진나루와 매포 도담삼봉나루…. 그곳에 가 가만히 귀 기울이고 서면 항구 호롱불 사이로 유곽의 밤 선원들의 걸죽한 사발가 한대목에 정선 적송을 베어 타고 흐르던 강원도 뗏목꾼들의 구성진 아라리 소리가 다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마차집 새 며느리가 종종 걸음으로 새우젓 단지를 들이는 모습이며 지필묵을 고르는 단양 산골서생, 콩가마를 지게에서 부리는 제천 머슴들의 모습까지 다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그 뱃길이 강변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이 넓고 편한 도로를 맘껏 누리며 사는 우리가 그 더디고 불편한 그 옛날 뱃길이 그리운 것은 어떤 연유일까.

오늘 아침 뉴스에서 내가 읽은 ‘충북도, 808억 투입 지방도 확장·포장’ 기사가 더 이상 반갑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은 지금 빠르고 넓은 길로 넘쳐난다. 내가보기엔 그냥 넘쳐나는 게 아니고 쓸데없이 넘쳐난다. 이러다간 세상천지에 들과 산은 없고 황량한 길만 남을 것이다. 차라리 수중보나 댐을 헐고 큰 강물 뱃길이나 내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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