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청주에는 투명 이름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이 ‘시계탑’과‘수아사’이다. 한때 도심 청주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말 그대로 ‘시계가 있는 탑’이 있고 ‘점포 수아사’가 있던 자리다. 사직 주공아파트 초입 큰길가에 우뚝 서 있던 시계탑, 상당공원아래 성안길 들어가는 길 맞은편 꼭지점에 있던 수아사!

1970년대 초 트레이닝복이 한창 유행이었을 때 나도 그 곳에 가서 흰줄을 세 개나 박은 화사한 감색트레이닝복을 맞춰 입었다. 1960년대 편물이 가내수공업으로 유행할 때도, 너나할것없이 손뜨개질이 한창일 때도 우리 누이들은 그곳에 가서 털실을 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시계탑과 수아사. 지금도 시민들은 시계탑아래서 만나자, 수아사 앞으로 나와라하며 약속을 한다.

국보제약 없는 국보제약골목, 밤나무 없는 밤고개도 여전히 유효하다. 도심 속의 골목이름, 지형이름은 대개 큰 건물이나 어떤 상징물 번창한 점포 이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돼왔다.

사람들의 별호도 그러하다.

대개 생김새나 이름 글자, 그 사람의 독특한 버릇이나 말투에 따라 정해지는데 나도 몇 차례 그 별명을 바꿔 들으며 성장했다. 어릴적엔 이름에 ‘호’자가 들어 간데다 얼굴도 동그랗다해서 ‘호떡’, 고등학교 때부터는 머리는 크고 몸은 마른 편 이어서 ‘올챙이’.

최근에는 여름산사수련회에서 1080배를 힘겹게 하는 내 모습을 본 불교대 도반 들이 붙혀준 ‘몸부림스’가 있다.

정겹고 고마운 또 다른 내 이름들이다. 예전에는 작고 큰집마다 모두 택호가 있었다. 대문이 큰집은 ‘큰대문집’, 울안에 은행나무가 커서 ‘은행나무집’이요 한번 군수면 영원한 군수여서 그 집은 여전히 ‘군수댁’이었고 ‘면장댁’이었다. 그도 저도 아니면 대개 아낙들의 친정 동네 이름을 따서 불렀는데 ‘괴산댁’에 ‘회인댁’이고 경상도에서 왔으면 ‘영남댁’이었다. 내가 태어난 수동 달동네, 우리 동네이름은 ‘탑바위골’이었다. 달 아래 집집마다 마당에 바위를 안고 사는 데다. 동네 한가운데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탑이 있어 ‘탑바위골’인 것이다. 나는 요즘도 마음이 심란 할 때면 가끔 그곳에 간다. 낮게 마음을 내리고 ‘탑바위길’, 그 남루한 골목에 들어서면 부풀어 오른 생채기 마음이 한결 고요해진다. 탑바위길 ! 골목이름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그곳에 들어서면서 파란 작은 팻말 위에 그림처럼 써 있는 정겨운 이 도로이름에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용화사 가는 길엔 ‘용화길’이 있고  내덕동 사뜸마을 에는 ‘사뜸길’이 있다.  실 끝 같은 작은 골목에도 다 이름을 붙혔다. 아직 이 서양식 스트리트 개념의 새 도로이름과 주소체계는 사실 우리 정서에 안착하지 못했다.

청주시가 시범도시로 선정돼 그 동안 고유이름을 애써 찾아내고 열심히 홍보도 했지만 오랜 우리의 관습과 정서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써 왔던 이 주소 체계도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던 걸 감안한다면 지금의 도로 길을 중심으로 한 서양식 주소에 우리 정서를 잘 혼합하면 무언가 새 답이 나올 수 도 있겠다. 단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이 새 주소체계의 조기 정착 실패의 요인을 다시 한번 잘 점검해야 할 것이다. 걸러내야 할 급조된 이름은 없는지 주민들에게 좀더 쉽고 편리하게  다가가는 혜안은 없는지 전면 시행에 앞서 우리가 모두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 할 일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