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은 ‘이’로 끝나는 이름이 많다.

깜깜한 산골 오지여서 ‘먹뱅이’.

샘이 둘이 있는 마을은 ‘쌍샘이’.

돌아가는 이름 없는 산모퉁이는  ‘허산 모링이’ 였다.

‘허산 모링이’가 있었다.

무심천이 작은 구릉을 끼고 도는 신평뜰 한 켠에 그림같은 작고 예쁜 산, ‘허산 모링이’가 있었다. 지금의 용암동입구 한마음예식장 건너 상당자동차학원자리다.

우마차 다니던 신평뜰에 신작로가 나면서 냇가 쪽으로 조금 남게된 그 언덕 같은 이름 없는 산.

그래서 용바위골과 대머리, 원평뜰 사람들은 그 곳을 이름 없는 비어있는 산 모퉁이다 해서 ‘허산모랭이’ 또는 ‘허산 모링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청주시민들은 그 산을 다 안다.

아니 그곳을 지나쳐 가덕으로 문의로 회인으로 오가던 충청도 사람들은 다 안다.

‘허산 모링이’는 곧 청주였다.

청주의 관문이자 상징이었다.

상수리나무 큰 키로 서있고 잠실로 쓰던 언덕 위의 하얀집이 오가는 길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곳.

무참히 허산모링이가 잘려나간 것은 대략 6~7년 전쯤이다.

용바위골에 청주 만한 신도시가 들어와서도 몇 년을 버티더니 결국 어느 날 청주의 전설로 자동차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모른다.

도심의 천연 소품 같은 그러한 작은 산들이 훗날 얼마나 큰 부가가치로, 보석 같은 땅으로 빛날 거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가 깡그리 밀어부친 그러한 산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각을 세우며 다시 나타나는지를….

왜 우리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산세를 살려가며 녹색 속의 작은 아파트,언덕 위의 빌라는 못 짓는 것일까.

작은 동산들을 그림 걸어두듯이 그렇게 옆에 끼고 살지 못하는 것일까.

바둑판처럼 그렇게 언제까지 밀어붙이며 집을 지어야할까.

그 독한 시멘트를 바다처럼 산처럼 붓고 전 국민의 대다수가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 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것도 몇 천 가구가 떼지어 우왕좌왕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강철이나 시멘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모르면 몰라도 이런 추세대로라면 우리는 곧 산악국가가 아닌 아파트 사막국가로 갈 것이다.

허풍을 좀 더 떤다면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지배해왔던 고대로부터 온 전통 건축은 이제 산 속 절에서만 볼 것이다. 또 집터와 거주지 산수풍경은 이제 산수화나 고전을 통해서만 볼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하여 나는 토지개발공사, 주택개발공사,아파트 건축업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이제는 우리의 혼과도 같은 저 산들을 더 이상 살육하지 마라.

대신 비어있는 구도심으로 가라.

키를 낮추어 남루한 도시 속 빈집들을, 빈터들을 돌보라.

내 말이 그들에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꽃샘바람 같은 마이동풍이겠지만 그런 메아리 없는 외침이 경천동지가 되어 다시 돌아 올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창밖으로 보이는 벌겋게 밀어부친 구룡산 자락 성화 택지 개발지구에서는 파헤쳐진 산 신음소리 가득하다.

우르르 저 불도저 소리가 내게는 마치 구룡산의 신음처럼 들리는 것이다.

자연의 보복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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