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세계화는 대세이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양극화 문제 해결을 올해의 중점 국정목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세계화라는 거센 물결은 수용하되 지나치게 골이 깊어진 국민들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그 골의 깊이를 줄여 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우리 나라는 IMF구제금융 시기 이후, WTO나 APEC 등 잇따른 국제회의에 참여하면서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너무나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실정이나 문화적인 차이가 고려대상이 돼야 하나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실정은 도외시되고, 미국 거대 기업들의 논리에 따른 자유시장 원칙을 따라야 세계화가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는 것 같다.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 더 예속화돼 가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단순한 논리를 떠나 계층 간 갈등과 이중적 사회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화의 주축인 사실은 틀림없지만 유독 의료이용 시스템에 있어서는 양극화가 심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을 갖추지 못한 나라이기도하다. 미국 국민의 절반 정도는 자신이 가입한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은 병·의원을 이용하고, 해당 병·의원에 보험회사가 진료비를 지불하는 민간의료보험체계의 적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의 15.6%인 4천500만명 정도가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고 매년 개인 파산자의 절반 이상이 질병과 의료비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정부는 의료서비스산업화 정책이라 해 우리나라 의료산업에 대한 향후 추진에 있어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추진’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 및 다양한 의료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민영의료보험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민복지증대를 위한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를 검토한다”고 한 바 있다. 이제 의료보장제도를 공공보험인 건강보험 중심에서 민간 의료보험이 보충하는 ‘이원화 체제’로 간다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들의 경험을 통해 민간의료보험의 확대가 사회적 불평등과 비효율성을 낳음이 입증됐음에도, 정부는 예산절감과 의료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과 관련한 의료서비스나 의료보장의 문제에 있어서도 시장의 논리로 문제를 풀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건강과 의료에 있어 시장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생존과 직결되는 복지부분에 영리를 추구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 공보험과의 경쟁을 부추긴다면 이는 대통령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거꾸로 양극화와 계층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책을 시행하는 꼴이 되고 만다.

미국이 높은 의학적 수준과 의료선택의 자유를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면에 의료보장시스템은 심각한 사회계층의 불평등과 비효율성을 낳고 가계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소위 일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도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의 공공의료보험제도를 제대로 관리해 국민 모두가 평등하고 부담없이 의료보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건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양극화와 낭비를 막고 더욱 건실한 의료보장제도를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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