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평균수명의 증가로 죽음은 이제 대체로 노약자에게 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간주하게 됐다. 그에 비해 젊은 사람은 아직 자신의 일과 사회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에 죽음은 먼 장래의 일이고 아직 자신과 관련있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 남아있는 젊은 가족의 책무였고, 사후에 행해지는 장례는 효를 행하는 근본이었던 그 시절과는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은 한 자녀 또는 무자식의 가족도 늘어나고 있어 자신의 사후처리 역시 대신 해줄 가족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한 노후의 일 역시 노후설계 안의 범주에 자리매김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인은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복지시설 노인병원, 요양시설 호스피스시설, 등의 사회부양 체제로의 이행과 더불어 장례식장이 늘어나면서 노인들은 죽으러 병원에 가고, 죽은 후에 장례지도사와 장의사가 염을하며 장례식을 주관하는 등 전문가가 맡게 됐다.

최근 들어 병원 임종은 10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화장을 하는 장묘관행 역시 서울의 경우 1일 평균 100여명이 사망하는데 화장하는 사람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장묘관행이나 장례식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고수하기엔 사회의 가치관이 변화했고 병든 노부모를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가족제도도 유지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인구구조의 변화, 여성의 사회진출, 핵가족화가 가족의 기능을 변화하게 했고, 그에 따른 기존의 가족제도 특히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점점 붕괴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죽음을 위한 준비는 새로운 준비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노년기 노화 및 사회적 적응을 위한 노력자체가 일련의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의 질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질이다. 그런 과정을 토대로 사후에 남을 자신의 가족이 부모를 상실한 고통과 유일하게 자신이 할 수 없는 사후처리를 위해 미리 정리해 두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항들을 미리 자식들에게도 주지시킬 필요가 있으며 가능하면 유언장에 명기해 둘 필요가 있다. 예를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돼 24시간 간병내지는 수발이 필요로 할 때부터 죽음에 다다라 장례 이후까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살아있는 유언장(미리 써보는 유언장)’의 사례를 제시해 보겠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과 고통을 당한 모든 이들에게 사죄하며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후에 진행될 일들에 대한 나의 뜻을 밝히고자 합니다. 가족(배우자 혹은 자녀 혹은 법정대리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으로 하겠으나, 아래의 내용은 의심없이 그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첫째, 의식이 없는 상태로 10일 이상 진행됐을 때 산소호흡기나 약물투약 등을 취하지 말고 집으로 옮길 것. 둘째, 심박동이 멈춘후 물리적 소생술을 시도하지 말 것. 셋째, 뇌사상태에 빠졌을 경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의료행위를 시행하지 말고 내 신체의 장기가 필요한 이에게 아낌없이 줄 것. 넷째, 사후에 나를 위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 것. 화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가족공동묘가 마련될 시 그곳에 보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가까운 곳에 뿌려줄 것. 다섯째, 부고를 하지 말 것. 여섯째, 문상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말고 식사는 충분히 대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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