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해 두었던 묵은 나물들이 나왔다. 곰취·다래순·고비·호박고지에 시래기나물까지….
아침나절 다녀온 육거리 시장은 지천이 나물 밭이다.

언제나처럼 정월대보름은 재래시장 좌판에 제일 먼저 온다.
음력을 사용하고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민족에게는 정월대보름이 그 해 농사의 첫 출발이 된다.

그만큼 의미도 커, 절일(節日) 중 가장 많은 수의 세시풍속이 전해져왔다.
이제 곧 고된 농사일로 접어드는 때라 사람들은 잘먹고 마시며 정초에서 보름까지 긴 축제기간을 누렸다.

집안에서는 안택굿 고사덕담에,
집밖에서는 걸립풍물이 돌고 수구제·당제·장승제·달집태우기에 고싸움. 줄다리기·쥐불놀이·다리밟기….

이때 행해졌던 세시풍속과 놀이문화는 일년 열 두 달 우리가 행했던 놀이의 절반이나 된다 한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이런 세시풍속은 대부분 건재했다.
걸립풍물패가 고샅을 돌면 어머니는 꼬깃꼬깃한 지전 몇 장을 들고 그들을 맞아 지극 정성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가택의 무병장수를 빌고 함께 지신을 밝으며 축원했다.

지금의 우암산 삼일공원 옆, 활터에는 당제를 지내는 산신각이 있었는데 정월대보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갔다.

함께 모여 수구제나 동제를 올려야 비로소 액막이를 했다는 마음이 들어 평온해지는 것이었다.

곤궁한 살림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진채식을 차리고 오곡밥을 먹었으며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러한 경건한 의식과는 상관없이 우리 악동들은 그저 즐겁고 풍요로운 재미있는 일거리를 찾아 몰려다녔다.

횃불을 들고 달맞이 우암산을 오르다 애꿎은 상수리나무를 통째로 태우던 일.
쥐불놀이를 하다 돌리던 깡통을 던져 초가를 태우는 건 다반사였고 틈만 나면 쥐불 달 불을 놓고 불구경 이었다.

옆집 장독대에 놓여있는 시루떡을 시루 채 들고 가다 넘어졌던 일이며 부잣집 기름진 반찬만 골라 훔쳐 동그라니 앉아 시시덕거리며 비벼 먹던 일….

그렇게 웃고 먹고 또 먹고 하며 올려다 본 악동시절의 밤하늘, 그 하늘의 보름달은 참으로 크고 밝았다.

청주문화의집 에서는 올해도 동 대항 시민 윷놀이대회와 풍물놀이· 제기차기·부럼 깨물기 행사를 연다.

충주에서는 달집태우기와 소원편지 쓰기가 열린다.
진천에서는 길놀이와 장승제가, 증평 보강천에서는 강강술래, 그리고 괴산 도원미술관은 올해도 탑돌이 축제를 준비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요량이다.

각 시·군별로 다양하게 열리는 이러한 대보름 맞이 행사들은 몇 년째 계속되며 비교적 자리를 잡아왔다.

생활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무관심으로 그저 고전의 문헌으로 사라져 갈 위기에 있는 우리의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세시풍속, 그나마 이렇게라도 미약하지만 우리가 애써 재현하고 보존해 가는 일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빈깡통으로 망월(望月)이라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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