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푸차레·람중히말 등 탄성 자아내
‘장엄’ 히운추리 보며 자연 위대함 느껴

   
 
  ▲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가 그림같은 안나푸르나 산군을 배경삼아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처음부터 급경사의 계단식 오르막길이다. 세속의 묶은 때가 비 오듯 흘렀다. 막내 용찬이를 격려하며 한발 한발 거친 숨을 토해 내다보니 갑자기 너른 다랭이 논의 들판이 나타났다.

추수를 마친 논에 때때로 유채밭과 마늘밭이 보이는 매우 정겨운 풍경이었다.

이런 정겨운 모습이 네팔 농촌의 본모습이 아닐까. 또 다른 오름길의 숨소리가 거칠어질 즈음 능선위에 마을이 펼쳐졌다.

새로 개설하는 도로가 이방인의 눈에는 달갑지 않았다. 환경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문명을 잠깐 탈피한 우리들의 이기심 일까.

마을을 돌아서니 눈앞에 안나푸르나산군의 장엄함이 펼쳐진다. 안나푸르나남봉, 마차푸차레, 안나 3봉·4봉·2봉, 람중히말. 숨소리를 멈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오른쪽에 안나푸르나 산군을 병풍삼아 왼쪽으로 울창한 숲을 배경삼아 마을길을 걸으니 어느덧 신선이 된 느낌이다.

배에서 시장함의 시간을 알려올 즘 우리는 쿡 덴지가 해놓은 식사를 하며 또 한번 감탄했다. 4일 만에 먹어보는 김치도 그러하거니와 그의 음식솜씨는 요리를 제법 한다는 윤영섭 선생님(여·평택초등학교)도 혀를 내둘렀다.

숲 속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황홀한 점심식사를 한 탐사대는 간혹 사라지는 설산을 숲 속에 품고 코발트색의 하늘에 우뚝 솟은 안나푸르나 남봉과 마차푸차레가 시원스레 보이는 포타나에 도착해 여정을 풀었다.

그곳에서 네팔 청소년과 우리 탐사대 사이에 축구 A매치(?)가 진행됐다. 4대1이라는 기분 좋은 패배를 했다. 패배의 아픔을 위로라도 해주듯  닭볶음탕이 식사로 나왔다. 어찌나 맛나고 질기던지 어렸을 적 시골에서 먹었던 묵은 닭 맛이었다.

9일 숲 속의 능선을 따라 올랐다. 대나무들은 원시의 풍경을 자아냈고 고사리들은 등산로 주위를 뒤덮었다. 그 사이로 안나의 산군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고사리는 양치식물로 식물도감의 맨 앞부분을 차지한다. 숙근초로써 원시시대부터 생명력을 자랑하던 식물이다’라는 윤석주 선생님(청주여고)의 설명을 들으며 깊은 숲 속으로 다가섰다.

데우랄리에 도착하니 다울라기리가 번뜩 나타났다. 저 멀리 있어 고개만 내밀고 있지만 8천127m의 위용은 당당했다.

끊임없는 내리막을 내려서며 속상해하는 (올라갈 걱정 때문에) 용찬에게 삶의 여정에 내리막과 오르막이 함께 있게 마련이라는 철학적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 계곡의 구름다리가 나타났다. 용찬이에게는 놀이터로, 여선생님들에게는 비명소리의 현장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만난 네팔여성 2명은 옷감을 만드는 알로라는 나무 속껍질과 종이를 만드는 록다 껍질을 한 바리 머리에 이어지고 저 멀리 시장으로 나갔다.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그 비탈진 기슭에 집을 만들고 다락논을 일구고 살아가는 눈빛이 선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끝없이 펼쳐지는 1천여m의 계단식 논은 조용하고 신기했다. 그들과 조상들이 살아온 수백년 간의 노정을 생각해 봐야 했다.

이런 곳에서 슬리퍼에 맨발에 며칠이고 씻지 않은 그들을 더럽다고 보아야 할지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끊임없이 펼지는 산의 파노라마속에서 그들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과의 호흡 일게다. 

난드룩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추리의 장엄한 광경은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느끼게 해줬다.

그런 우리에게 히말의 여신은 이 마을의 17세 소녀 로비나를 보내 현란한 춤사위로 사기를 돋워줬다.

누군가 말했다. “히말라야가 네팔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가히 절대적이다. 그것은 네팔의 문화이며 네팔사람들의 심성이다. 히말라야를 보지 않고 네팔을 논한다는 것은 삼국지를 읽지 않고 영웅호걸을 논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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