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밤은 더없이 고요하다.
간밤에는 모처럼 촘촘한 별들로 밤하늘이 가득했다.

산중의 밤은 이름할 수 없는 에너지가 흐르는 듯 하다.
밤을 새워 정진해도 이토록 쉬 지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번 보탑사 겨울 수련회는 각박해진 심신을 뉘며 새해 다짐을 다시 채근하기에 족했다.
팔순 노모는 오늘도 장독대에 먼저 올리고 나서야 김이 모락모락나는 가래떡을 내려놓으셨다.

몇 무더기로 떡을 가르며 당신 손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미국 간 아무개가 걸리고 아무개는 조청이 있어야 할 것이고 아무개는 떡국을 싫어하고….

지금은 다소 간소해졌지만 평생을 어머니는 장독대며 부엌을 오가며 어머니식대로 소원성취 기도와 축원발원을 하셨다.

맑은날 밤하늘 북두칠성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 날 밤은 합장하며 비는 손이 더욱 절실해진다.

내가 보기엔 별 영험도 없는 그저 기복의 의례였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칠성신의 보살핌을 믿는다.

옛날 사람들은 별자리를 하늘에 건설되어있는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했다.
하늘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북극성은 천제(天帝)로, 북두칠성은 천제를 대변하는 별로 여겼다.

북두칠성이 순차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지상의 계절이 바뀌면서 만물이 태동·생장·성숙·수장(收藏) 등의 변화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그런가하면 북두칠성은 비를 내리는 신으로, 또는 인간의 수명과 출산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믿어져 풍농을 빌거나 입신출세할 수 있기를 비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빌고 또 빌었다.

‘강원도 아리랑’을 보면 “유점사 법당뒤 칠성당에 모두 모여 앉아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나달라고 백일정성”이라 했고, 경기민요 ‘한오백년’에도 “백사장 세모래 밭에 칠성단을 모으고 님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라고 노래했다.

우리는 죽어서도 북두칠성을 떠나지 못했다.
사람이 죽으면 관에 북두칠성을 그린 칠성판을 넣어 다음세계의 무병 장수를 빌었다.
그뿐이랴 사람이름도 마을이름도 칠성이었다.
‘괴산군 칠성면 에 사는 머슴 칠성이….’

그토록 북두칠성은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가장 친숙한 별이요 가장 믿고 따르는 간구의 대상이었다.
오후 햇살 가득한 오늘 어머니의 장독대가 반짝인다.

정갈하게 닦인 배불둑이 옹기들이 작고 큰 모습으로 키 재기를 하며 서있다.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그 곳은 어머니가 제일 편안히 머물던 피안의 세상이다.

또한 우리 집안의 모든 길흉화복이 다스려진 어머니의 신성한 제단이기도 했다.
돌아올 정월 대 보름날 어머니는 변함없이 시루떡과 정한수를 떠놓고 빌고 또 빌 것이다.

이번엔 무엇을 또 그리 간절히 소원 하실까.
올해는 부디 어머니의 기도가 짧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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