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긴 여름도 지나고 본격 관광철인 가을이 어느새 다가왔다.
가을은 신선한 바람과 함께 주말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속리산의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청정지역 보은군은 그야말로 관광농업군으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에 가볼만한 곳이 즐비하다.
보은군의 가볼만한 곳을 올 가을이 가기전 가족과 함께 만끽할 수 있도록 소개해 본다.

속리산은 맑고 시원한 공기와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청정보은의 상징적인 존재다. 보은군청에서 37번 국도로 상주시와 갈림길인 말티휴게소를 지나 말티고개에 이르면 속리산의 준령들이 나타난다.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국팔경 중의 하나로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해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057m인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 미지산, 소금강산으로 불리고 있다.

화강암의 기봉과 산 전체를 뒤덮은 울창한 산림은 천년고찰 법주사와 잘 조화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고 천황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등 8봉과 문장대, 입석대, 신선대 등 8대 8석문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672종의 식물과 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그야말로 자연자원의 보고가 이곳이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호서 제일의 명찰 법주사는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있다. 보은읍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통일삼거리를 지나 말티고개를 넘으면 속리초 방면에서 나온 505번 지방도와 만나는 갈목삼거리에 이른다.

보은의 얼굴인 법주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으로 창건했는데 절의 이름을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창건 이래로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성덕왕과 혜공왕때 중창했다.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했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전 백일기도를 올리기도 했으며 병에 걸렸던 세조는 복천암에서 사흘기도를 올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정유재란때는 충청도 승병의 본거지였다 해 왜군들의 방화로 모조리 불에 타버린 후 사명대사가 대대적으로 중건해 인조 4년까지 중창했다.

이곳 법주사에는 보은의 지정문화재 절반 이상이 몰려 있고 국보만도 석점이나 되고 천왕문, 사도세자 어머니 영빈 이씨의 위패를 모신 선희궁 원당, 16나한상의 능인전,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한 회견 보살상, 쌀 80가마가 한꺼번에 들어가는 석조와 쇠솥이 있다.

구병산은 마로면 적암리와 경북과의 도계에 웅장하고 수려한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 진 산으로 가을단풍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있어 가을 산행지로 최적지다.

산악탐방 코스로 연계된 광관자원은 10분정도 거리에 아름다운 자연과 시설물이 조화를 이룬 서당골관광농원과 서원겦맑側瘟? 삼가호수 등이 있고 99칸의 선병국 고가를 비롯해 역사교육의 산교육장인 삼년산성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속리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등산객들이 자주 찾고 있으며 특히 가을 단풍이 멋들어진 구병산은 적암리 휴게소부터 산행이 시작돼 다섯시간 정도의 산행코스로 되어 있다.

보은군은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 구간을 지난 99년 ‘충북알프스’로 업무표장 등록해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정상은 평평하며 넓은 보은평야가 내려다 보이고 구병산과 속리산 사이에 숨어있는 서원계곡과 계곡진입로 주변에는 수령 250년된 도 지정보호수 정이품송의 부인으로 불리는 정부인 소나무가 보인다.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154의 선병국 가옥은 1919~1921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 건물의 칸이나 높이 등을 크게 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기의 대표적 건물로 손꼽힌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및 사당 3공간으로 되어 있고 안담은 둘러싸고 그밖을 바깥담으로 크게 둘러싸여 있다.

바깥담 남쪽 집의 어귀 솔밭숲속에는 이 집 할아버지 선씨의 효자정각이 자리잡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인 연화부수형이어서 자손이 왕성하고 장수를 기원했다고 하며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 축성을 시작한 지 3년만에 완성해 붙여진 이름으로 이후 소지마립간 8년(486)에 실죽이 3천명의 인부를 징발해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다고 전해지며 삼국통일 전쟁때 태종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이곳에서 맞이하기도 했다.

고려 태조 왕건(918~943)이 이 성을 점령하려다 크게 패했던 곳이기도 한 삼년산성은 우리나라 가장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7㎞고 성벽의 높이는 13m, 폭은 8~10m에 이르고 성벽의 군데군데 곡성이 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성내에는 아미지란 커다란 연못과 김생의 필체로 전해오고 있는 옥필, 유사암, 아미지 등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서원계곡은 아름다운 산수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하는데 외속리면 서원리에 있다. 속리산 천황봉이 발원지인 삼가천이 삼가저수지에 모였다가 내려와 맑고 깨끗해 여름피서지로 각광받아 속리산 국립공원내 제2의 화양계곡이라 불릴 정도다.

만수계곡은 내속리면 만수리에 있으며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 삼가저수지까지 4㎞를 굽이 흐른다. 주위의 우거진 숲과 깍아지르는 듯한 바위의 절경을 감상하며 물속까지 보이는 맑고 깨끗한 물로 여름피서지로 유명하고 두곳에 설치된 임시수영장은 취사와 야영이 가능해 오토캠핑하기에 적당하고 민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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