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지난 주에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은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지 40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동안 동창회 밴드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소식은 주고받고 있어서 가끔 전화연락을 하던 친구였다.

금요일 저녁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충주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온 친구와 함께 선생님을 만나뵈었다. 나는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서, 종종 선생님을 뵙곤 했었지만, 친구는 전화연락도 처음인 모양이었다. 함께 한 자리에서 학창시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생님은 퇴직하고 연세가 70을 앞두고 계셨고, 소년이었던 우리도 얼굴에서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보면 선생님과 연배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주름도 깊었다.

친구는 고2때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에 가출을 감행했었다고 했다. 일주일 가량의 방황 끝에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학교로 돌아온 친구에게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떠날 때는 네 마음대로 했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그렇게 못한다. 졸업할 때까지 학교생활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받아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자가 마음을 다잡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제자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반성문을 잘 썼다고 칭찬하신 선생님은 학교교지에 그 글을 실어주시며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친구는 어려운 형편에 우유배달을 하며 대학을 다니면서도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선생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자식을 낳아 잘 길러서 이번에 둘째 아들이 명문대 경제학과에 합격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거듭 표현했다.

내 기억으로 친구는 총명했고 늘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열심히 공부했었기에 가정 형편이 불우했었는지, 슬픔의 그늘이 있었는지를 몰랐다. 사십 년이 가깝도록 고마운 은혜를 잊지 못한 친구의 마음도 갸륵했고, 성장기의 불우했던 제자를 따뜻하게 품어준 선생님이 고마웠다.

친구는 준비해 온 감사패에 ‘철없던 시절,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던 우리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새겨서 꽃다발과 함께 전해드렸다. 선생님의 감격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교사로서 이보다 더 한 보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은 한 학급에 육십 명 가까운 학생이 한 교실에서 북적였기에 학생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두기 힘들었고, 체벌이 통제의 수단으로 당연시되었었다. 나도 철이 없어 꾸중도 자주 들었고 많이 맞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꿈 하나 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그 가난했고 힘겨웠던 시절, 선생님이 계셨기에 어두웠던 청춘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 두어 시간 동안 선생님과 함께 학창시절의 추억을 나누면서 마치 열일곱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했다. 친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서울 가는 막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제자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생각했다. 부끄러운 기억도 떠오르고, 좋은 추억도 떠오르기도 했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교사로서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남은 교직생활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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