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고 집사람과 종종 다투었다. 그러나 올겨울 유난히 추워도 보일러 틀자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TV나 인터넷을 보면 지난달 난방비가 전달보다 배가 나왔다는 소리는 다반사가 되었다.

이 난방비 폭탄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된 것이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탓이냐 공방이 한창이다. 여기에 매스컴은 국제 가스 가격이 내리는 데 우리만 난방비가 오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월급은 오르지 않고 모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국민들 보기에는 속 터지는 일이다. 국제적으로 어디를 보아도 에너지 가격이 예전처럼 될 수 있다는 소리는 없다. 알렉산더 데 크루 벨기에 총리는 유럽은 앞으로 최대 10번의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하고 있다.

지금의 에너지 문제는 OPEC의 감산, 미국의 전략적 비축유 방출 축소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의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의 국제 정치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문제이다. 에너지 위기로 유럽의 도시가스 요금은 평균 5배 올랐고, 독일은 거의 8배 올랐다. 이에 대응하여 유럽 각국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세금 혜택, 에너지 절감 홍보, 에너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등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에너지 대란이 예상되었지만, 전기료와 가스 가격을 소폭 올리고, 공공기관의 난방 온도를 1도 내리는 것 이외에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야당이 난방비 문제를 정쟁화하자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부리나케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생활에너지 정책은 국민을 원숭이로 대하듯 조삼모사(朝三暮四)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 위기를 폭탄 돌리기 게임으로 차기 정권에 넘겼다. 그 결과 100%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는 전 세계 평균보다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 소비 잔치를 치렀다. 2022년 말 기준 세계 에너지 평균 가격을 보면 전기료는 kWh 당 0.14달러, 휘발유는 4.9달러, 천연가스는 0.09달러다. 그러나 우리의 전기료는 0.09달러, 휘발유 4.4달러, 천연가스 0.04달러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차이는 개인 차원에서 보면 직접 자기 돈이 나가지 않아서 불만이 없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모두 사용료나 정부 예산으로 지급할 것이다.

가장 좋은 정책과 전략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라고 한다. 변화는 위기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에 부응하는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국민들의 에너지 위기를 인식하게 하고 에너지 소비문화를 바꾸는 데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랜저가 국민차가 되고, 겨울철 아파트에서 반 팔 티셔츠 입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밤이 가장 밝은 나라를 자랑으로 삼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매년 난방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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