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재단, 시집 ‘모밀꽃’ 발간

충북문화재단이 충북 충주시 출생 정호승 시인의 흩어진 시를 모은 시집 ‘모밀꽃’ 표지.
충북문화재단이 충북 충주시 출생 정호승 시인의 흩어진 시를 모은 시집 ‘모밀꽃’ 표지.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충북문화재단이 충북 충주시 출생의 정호승 시인의 흩어진 시를 모은 시집 ‘모밀꽃’(비매품)을 펴냈다. 정호승(191~?) 시인은 옥천의 정지용, 보은의 오장환, 음성의 이흡, 진천의 조벽암, 영동의 권구현을 비롯해 청주의 신동문과 궤를 같이 하는 충북의 대표 시인이다.

정호승은 1930년대 초반, 이무영, 이흡, 지봉문 등 동향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정호승은 이들과 함께 서울 돈암동에서 ‘조선문학사’라는 출판사를 만들고 종합문예지 ‘조선문학’을 발간했다.

‘조선문학’은 1933년 5월에 창간하고 1939년 7월 폐간되기까지 모두 27권이 발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정호승은 잡지가 폐간된 지 두 달 뒤인 1939년 9월 30일, 그동안 쓴 시를 모아 시집 ‘모밀꽃’을 조선문학사에서 펴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정호승은 고향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40년에서 1945년까지의 총력전 체제가 조선 사회 전체를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8·15해방이 되자 정호승은 곧바로 정치 활동에 매진했다. 두 번이나 투옥되기까지 했던 그는 6·25전쟁 중에 월북했다. 그의 후손들은 지금껏 그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첫 시집 ‘모밀꽃’은 그의 유일한 시집으로 남았다.

소종민 문학평론가는 ‘정호승 시의 정경’을 크게 지극한 연민, 절망과 분노와 우울, 생의 기미, 가난의 편에 서서, 피할수 없는 별리(別離)로 나눠 보았다. 

시집 ‘모밀꽃’에 실린 34편의 시 가운데 ‘슬픔’이라는 낱말이 포함된 시는 12편이다. 더욱이 ‘슬픔’이란 낱말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어둡고 가라앉은 톤으로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들 또한 여러 편이어서 가히 슬픔의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에는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정호승의 시에서 드러나 있는 슬픔은 ‘까닭 모를 슬픔이 따스한 봄 위에 차다’(‘호들기여’ 1연)와 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슬픔인 경우가 대다수다.

정호승의 시들을 통해, 본인의 생활과 밀접히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것으로써 슬픔의 출처를 탐색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타지로 돈 벌러 간 학선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절절히 표현된 ‘불안이 풀리던 날’, 정인을 남겨놓고 떠나버린 옥이의 야속함과, 목숨이 경각에 달린 노파(옥이의 노모로 짐작되는)를 임종하는 ‘나’의 복잡한 심사를 그린 ‘고독’, 숫자와 돈과 시계에 매달려 청춘과 인생과 우정을 내팽개친 옛 벗을 그린 ‘그 어느 때의 벗’ 등을 볼 때, 시적 화자(또는 시인 본인)는 주변의 일에 근심이 많고 인간관계를 쉬이 저버리지 못한다.

미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시인은 그저 연민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기대가 큰 만큼, 관계가 틀어져 떠난 벗과 정인을 두고도 자기 때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뜻 맞는 벗들은/ 생활이 앗아가고/ 사랑은/ 생활 아닌 생활이 짓밟았소’라고 말하면서도 시인은 스스로를 ‘나는 외로운 탕아/ 나는 마음 약한 탕아’(‘나는 탕아’)라고 자칭한다. ‘나는 놈팽이’에서는 더 옳지 않은 생각으로 나아간다. ‘나는/ 벗에게/ 님에게/ 거짓말을 하였소’라며 ‘그러기에/ 벗은 나를 떠나가고/ 님은 나를 미워하고/ 외로움뿐만이 남아 있소’라며 자책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남은 것은 허탈한 웃음뿐이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외로움과 슬픔만이 시인의 벗 그리고 님이 된다. 오랜 슬픔은 모두가 시인의 지극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현듯 시인은 ‘흐르는 물 우에 얼굴을 비치우고/ 흐르는 물 우에 쪼라진 얼굴’(‘나그네’)을 바라본다. 초라하게 쪼그라든 자신의 얼굴을 본 시인은 젊음과 꿈을 잃은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난다. 동시에, 외로움에만 갇혀 있을 수 없고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 없음을, ‘의욕과 같이 넓은 하늘’과 ‘가슴속 깊이 품은 장강’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시인은 다시금 깨쳤을 것이다.

정호승의 시 가운데, 시적 화자가 시인이 아닌 작품들이 있다. 시인 스스로 이웃의 현실로 직접 들어가 이들로 변모한 시들이다. ‘뻔히 알면서’의 첫 구절에서, ‘후유―/ 이것을 내가 다 맸나/ 엄청나다’ 하며 시인은 농사꾼이 되어 그의 마음, 그의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펴며 기지갤 켜면’, 눈이 ‘까마득한 지평선에 걸리니’ 어느덧 ‘붉은 노을이 서리고 있다’. 힘들고 긴 노동에서 잠깐 맛보는 휴식의 순간에 시적 화자는 ‘나와 나의 벗들만이/ 아직도 들판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걸 본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내 피땀은 몇 섬이나 될 것’인가? 하지만 우리 식구의 몫은 쥐꼬리만치 적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 이 지긋지긋한 노동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묻는다.

소종민 문학평론가는 “정호승 시인은 산 자들 못지않게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서도 연민을 잃지 않았다. 이승에 잠깐 머물다 간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시인은 마음을 다해 시 두 편을 쓰게 된다. 그리고 두 시편 모두 정형(定型)을 갖추었는데, 기리는 대상 앞에서 마음을 정히 하고, 소란함이 없이 그이를 향한 그리움을 곧게 지니겠다는 의지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충북문화재단은 발간 이유에 대해 “해방된 나라의 자유롭고 평등한 미래를 꿈꾼 정호승 시인은 월북으로 한국문학사에서 임시 잊혀졌지만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책 ‘모밀꽃’으로 한과 고뇌의 평생을 살았고 하얀 꽃 ‘모밀’로 인생을 보낸 시인의 영혼과 문학을 기억하고자 한다”며 “지난해 충북학포럼에서 개최된 ‘모밀꽃 시인 정호승의 삶과 시 세계’ 이후 이번 시집 발간과 함께 시인의 작품과 생애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어느 여인이여

슬픈 넋이 실린양

햇쪽이 웃고 쓸쓸한

모밀꽃

 

모밀꽃은

하이얀 꽃

그 여인의 마음인 양

깨끗이 피는 꽃

 

모밀꽃은

가난한 꽃

그 여인의 마음인 양

외로이 피는 꽃

 

해마다 가을이와

하이얀이 피여나도

그마음 달낼길없어

햇쪽이 웃고 시드는꽃

 

세모진 주머니를 지어

까-만 주머니 가득

하이얀 비밀을 담어놓고

아모말없이 시드는꽃 

 

                   -‘모밀꽃 1’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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