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얼마 전 졸업한 여고에서 교지(校誌)에 실릴 글을 청탁받았다.

여고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글을 써야 할지 적잖은 고민 끝에 ‘뒷모습의 두 얼굴’ 이란 제목으로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다.

정초가 지난 어느 날 ‘성녀(成女)’ 교지가 집에 도착했다. 졸업 후 46년 만에 받아보는 교지를 보자 반가움에 즉시 개봉했다. 표지에는 제61회 졸업을 알리는 숫자와 함께 학교 전경이 실린 사진과 교화인 목련과 교목인 느티나무가 꿈 많던 여고 시절을 소환해 왔다. 무엇보다도 여고를 상징했던 세모꼴 뺏지를 보니 3년 동안 학창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여고 시절의 나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조용히 학교 다니는, 공부도 그럭저럭 따라가는 학생이었다. 어쩐지 그 나이에는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 같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며 자아를 찾아 가출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둠의 세계는 변변찮은 내가 상대하기에는 그 두려움이 너무도 커서 시도도 못 해보고 끝나 버렸다. 독립은 멀찌감치 밀쳐두고 뒷골목 음반 가게에서 ‘엘비스’나 ‘김정호’ 음반을 사고, 밤이면 ‘별이 빛나는 밤에’을 들으며 엽서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건 나였고, 헛웃음만 나는 철없는 여고생이었다.

고1 학년인 나를 다시 온전한 나로 돌려준 것은 2학기에 실시했던 생활관 실습이었다. 일주일간 생활관에서 한복을 착용하고 여자로서 익혀야 할 덕목과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관한 수업을 받았다. 한복의 의례는 나의 감성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나와 색이 다른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는 교우들에게도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생활관에서 퇴소한 후, 변해가는 교우들이 자신의 꿈과 장래 희망을 찾아 정진하는 모습을 보며 목표가 없었던 나도 그제야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일찍이, 한참 자라나는 나무에 ‘道理’의 수액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훗날 소혜왕후의 ‘내훈(內訓)’을 접하면서 더욱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연혁을 보니 내가 태어나던 해에 모교가 설립되었다. 올해로 어언 수연(壽宴)을 맞은 나이다. 역사와 전통 깊은 나의 모교가 오늘날 졸업생 수가 이백여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니 어느 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다음 장을 넘기니 다양한 동아리 활동사진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나의 여고 시절에서 가장 특별한 행사가 하나 있었다. 사직 공설운동장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전교생 일천오백여 명이 단체로 카드 섹션을 했다. 벌 떼 같은 여고생들이 하나가 되어 펼치는 카드 섹션은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그 위용은 대단했다. 수많은 훈련을 거쳐야 이뤄낼 수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을 위해 반나절 동안 물도 화장실도 참아야만 했다. 스타디움 한쪽에서 LED 전광판 같은 카드 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의 학생 수로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동문의 글’ 부문에 실려있는 ‘뒷모습의 두 얼굴’을 후배가 읽어 줄 것을 생각하면 선배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졌던 꿈과 희망, 고민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교지를 넘기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흘러내린다. 그립고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아려오기도 했으나 나의 푸른 시간을 되찾아주었다.후배들 역시 내 나이가 되면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며 빛나는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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