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의 흐름을 빨리 그리고 예민하게 느낀다고 한다. 10대 때에는 시속 10㎞로 달리는 느낌이고, 30대에는 시속 30㎞, 60대에는 60㎞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생이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지극히 짧다는 뜻일 것이다. 작자 미상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이해가 끝이라면 / 남이 알아주는 나에게서 / 내가 알고 있는 나에게로 조용히 돌아오리라. / 이 해가 끝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나에게서 / 주님이 알고 있는 나에게로 / 엄숙히 돌아가리라. / 이 해가 끝이라면, / 마음의 밀실을 뒤져보고 / 빗나간 발자국을 세어보고 / 모진 입술을 만져 보리라. / 이해가 끝이라면,/ 하루를 천년같이 책임 있게 / 한 걸음을 만 리 같이 조심스럽게/ 사랑과 경건과 충성으로 살다가 / 피곤한 무릎 / 지친 몸으로 주님을 뵈리라.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다고 한다. 죽은 후에 다시 다른 동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하는데, 불교의 깊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말 할 수 없고,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믿고 있기에 죽음 후에 영원한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어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확신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참으로 짧은 인생인 데 한 순간 한 순간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서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에베소서5:16-17)고 했다.

평생을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남을 위해 살다 간 사람들도 있다. 테레사와 같이 자기 몸을 불태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자신의 인생을 불태웠던 그 아름다운 여인을 보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지상의 낙원이 됐을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 해가 마지막이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한정된 인생을 한 순간 한 순간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선한 생각, 아름다운 생각, 헌신과 희생을 위한 생각을 갖고 매 순간을 결단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독일의 천재 신학자 본훼퍼는 ‘인간은 남을 위한 존재(Man for others)’라고 했다. 그는 히틀러의 광기를 잠재우고 더 이상의 유대인 학살과 그의 폭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히틀러 총통의 암살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후 프로이센 부르그의 포로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은 인류 역사 상 수 없이 많다. 반면,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들이 더 많다.

이제 우리가 이 해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남을 위한 보람 있는 삶을 살아서 남도 살고 나도 살아 다 같이 함께 누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도 못 살고 남도 못 사는 세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한 봉사와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사는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봉사와 희생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고 맛이 있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이웃으로 온 세상으로 이러한 향기로운 삶이 널리 퍼져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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