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1992년 코미디언 이경규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한 복수혈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 태영이 자신을 감옥에 보내서 인생을 망쳐놓은 악당 마태호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비록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유명 코미디언 이경규 작품이라고 가끔 회자한다. 복수는 한국영화나 해외영화에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다. 2000년 이후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신의 한 수’ 등의 한국영화와 ‘모범 시민’, ‘몬테 크리스토’, ‘존윅’과 같은 해외영화의 주요 테마는 복수다.

최근 이 복수가 주제인 K-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송중기 주연의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 학교폭력으로 피해당한 송혜교가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더 글로리’와 최근 방영을 시작한 법과 돈에 얽힌 복수를 다룬 ‘법쩐’ 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복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하여 자기가 당한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행위이다. 복수심을 가져오는 원한은 돈 없고, 힘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에서 생긴다.

우리의 힘없고 돈 없고 권력이 없어서 원한을 가진 선조들은 그 원한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믿으면서 신이 악한 사람을 벌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한을 품고 자살을 한다.

한국사람의 전통적 의식구조에는 장화홍련전에서 보듯이 이렇게 한이나 원(怨)을 품고 죽은 사람을 공감하고 그 공감을 신앙으로 승화시켜서 무언의 저항을 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복수극은 이러한 소극적 복수가 아닌 장작 위에서 잠자고 쓸개를 맛보듯 어떠한 고난도 참고 견디는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복수를 그린다.

복수를 가져오는 원한은 슬픔·후회·자책·분함·억울함·원통함·저주·앙갚음과 같은 것이 풀리지 않고 맺혀서 만들어진다. 이 맺힌 한을 합리적으로 풀고자 인간은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복수를 테마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공통점은 법이 그 한을 키워서 복수심을 만들고 있다.

역사는 법이나 제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민원(民怨)이 많아지게 되면 대원(大怨)이 되고 국민의 한인 민한(民恨)이 많아지면 천한(天恨)이 되어 정사가 붕괴하고 민란에 의해서 혈전을 함으로써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짐을 보여주고 있다.

2023년은 모든 면에서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복수혈전처럼 보인다.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하고 여당과 정권은 법치주의 완성이라면서 서로의 목을 치려고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국민을 자기편 똘마니로 만들어서 싸울 준비만 하고 있다. 이러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은 그 싸움이 드라마처럼 혈전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복수의 악순환을 키우는 폭력집단의 복수혈전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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