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며칠 전, 어떤 팟케스트(Podcast)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16세기 조선에 김안국이라는 문신이자 대학자가 있었다. 예조판서, 병조판서, 대제학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었다. 명필에 훌륭한 문장가로 알려진 그의 어린 시절은, 그러나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심각한 문제아였다.

김안국은 집안 대대로 대제학을 지내는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학자 집안의 맏아들이기에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가문과 빼어난 용모와는 다르게, 불행히도 글 배우기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다.

인내심이 강한 아버지였지만 14세가 되도록 글을 깨우치지 못하자, 아들을 안동의 동생에게 보내 버렸다. 김안국의 숙부는 아버지보다 인내심이 더 컸지만, 역시나 머지않아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조카를 안쓰럽게 생각한 숙부는 안동에서 이름난 재산가 집안의 딸과 혼인을 시켰다. 명문가 사위를 얻게 된 처가도 처음에는 좋았으나, 문맹에 가까운 글솜씨에 실망하고 말았다. 결국 김안국은 본가와 처가 모두에서 무시당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달랐다. 서방님이 글 읽는(시각) 것은 젬병이지만, 귀로(청각) 들은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모두 외워서(기억)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내는 글을 읽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책의 내용을 모두 이야기 형태로 들려주었고, 김안국은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많은 문헌을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책(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글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결국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그 이후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아 집안 대대로 물려오던 대제학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겠지만 그 당시에는 능력 없고 게으르고 정신 못 차리는 못난이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잠겨진 대문 앞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문이 열리기만 바란다. 열심히 두드리고, 밀어도 보지만 대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옆에 있는 곁문으로 들어가서 빗장을 열어줬더니 모두 대문으로 들어갔다는 교훈이 있다.

김안국은 대문 밖에 있었고, 곁문으로 들어가 대문을 열어 들어오게 해 준 것은 그의 아내였다. 글공부를 통해서만 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자식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먼 조선시대의 이야기이겠는가?

우리도 학교 공부와 시험 성적으로만 자녀들을 평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안국 대제학처럼 이야기를 잘 기억하거나 사람의 마음을 잘 살펴주는 등의 능력은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는 모두 젬병이다.

결국 공부만 잘하는 아이, 그래서 공부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필자도 공부에만 매달려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직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외는 젬병이었다. 아내에게 늘 듣는 말이 ‘공부라도 안 했으면 어떻게 될뻔했어요?’이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되지말고, 공부만 못하는 사람이 되라’는 아내의 지론대로, 필자의 아이들은 공부는 못하지만 마음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곁문으로 들어가 자녀들의 대문을 활짝 열어줄 사람은, 가능한 부모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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