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얼마 전 조문(弔問) 때문에 택시를 한나절 대절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외모나 언행면에서 범상치 않아 보였다. 조문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스스럼없이 터놓고 살아온 날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공고를 다닐 때 배관, 전기, 용접 등 자격을 취득하고, 졸업 후 회사생활 10여 년간 한 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철공소를 차렸다. 성실한 탓에 신용을 얻게되어 일감은 몰려들고 직원을 늘리는 등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다.

집안 어른의 소개로 친척 하나를 고용하여 수금하는 업무를 맡겼더니 거래처마다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서 경리일체는 그에게 맡기고 자기는 현장업무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러기를 수년, ‘믿는 도끼에 발목 찍힌다’더니, 그는 회삿돈을 빼돌려 술과 여자, 도박 등으로 탕진함으로써 회사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돈도 돈이고 회사도 회사지만, 내가 속았다, 배신감 때문에 치미는 본노를 억제할 수가 없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치미는 분노와 배신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 아닌가!

어느 날 문득 ‘택시 운전’ 떠올랐다. 운전에 열중하다보면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처음시작 할 때는 하루에 16시간이나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운전할 때는 운전에만 열중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에 떨어지고! 그렇게 하니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만약 운전이 아니었더라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수도, 자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우리 삶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다)’라더니, 그날은 조문도하고 인생의 상수도 만나고, 매우 의미 깊은 하루였다.

계묘(癸卯)년 새해가 밝았다. 이태백은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시간 속의 나그네이다”라고 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시간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다. 시간이 알고 싶어서 내 영혼은 불타고 있다. ‘시간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지 않으면 직감적으로는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을 하면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금세기 최고의 지성인으로 추앙 받는 독일 태생의 에카르트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란 명저를 남겼다.

“삶은 지금이다. 지금 아닌 삶이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지금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영원한 현재야말로 우리의 현재 삶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언제나 우리와함께 남는다. 지금만이 마음이 제한하는 범위를 넘어 영원한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다”고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지나간 생각이란 ‘근심 걱정 원망 분노’로서 여기에 얽매이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현재에 의식을 집중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생각은 ‘구름’이며, 현재는 ‘태양’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지난날의 생각 때문이며, 현재에 의식을 집중하면 구름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지혜가 솟아난다. “지난 일은 지난밤에 묻어요/ 잊지는 말아요,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란 트로트 가사가 횡설수설 떠오른다.

지난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에 의식을 집중했던 택시기사가 내 인생의 상수(上手)였다. ‘삶은 지금이다. 오늘 이 순간을 살자!’ 이것을 계묘의 화두(話頭)로 삼았다. ‘오늘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이요 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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