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참 길었던 2022년도 이제 끝자락에 섰다. 세계적 경제불황의 시작,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로 인한 국제적 물가상승, 리오날 메시의 우승으로 끝나 월드컵. 국내정치 또한 정권교체라는 큰 변화만큼 내홍을 겪고 있다.해 아래 인간의 삶은 항상 진보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지혜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보여주는 한 해였다.

10·29 참사는 정치 권력에 대한 탐욕이 초래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끝을 모르게 오르던 집(아파트)값은 곤두박질을 시작했고, 그 끝도 알 수 없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인간 세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다. 가난에 쪼들려 살던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후 자신을 죽인 재벌가의 손주로 환생했고,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찾아간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전생과는 다르게 재벌가 가족들은 돈 때문에 행복을 잃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더 많은 돈을 가지려 한다.

정도경영이라는 사훈의 도(道)는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돈이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과 혼탁한 집안싸움에서 회장의 경영방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아는 주인공도 윤리를 지키기 힘든데, 하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야 어찌하겠는가.

드라마의 재벌가 자식들은 한결같이 행복하지 않다. 돈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좇아서 살지 못하는 삶의 진리를 잘 보여준다.

풍족함, 넘쳐남이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돈을 좇아 아파트를 사고, 주식에 투자하며, 권력에 기대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것일까? 언제 욕망을 멈추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1년간의 제주도 생활을 마치면서 부족함의 감사를 배웠다.

늘 동경만 하던 제주도 살이, 이국적 자연경관과 깨끗한 환경, 어디를 가든 관광지인 제주도는 육지 사람들에겐 꿈의 장소이다.

그런데 제주도민에게는 반대로 육지가 꿈의 장소이다. 어떻게든 섬을 벗어나 육지로 나가는 것이 소망인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꿈꾸고 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모르고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

인간에게는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를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제주도민에게 성산일출봉, 한라산, 곶자왈 등은 별 감흥이 없다. 한라산 등반을 필자보다 더 많이 오른 제주도민은 매우 드물다.

많으면 많을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1년의 생활만으로도 제주도에 대한 감사가 사그라지기에 충분하다.

대상이 권력이든 돈이든 자녀의 학력이든, 많다고 행복하고 감사한 것은 아니다. 부족함 중에 가끔 주어지는 돈, 어쩌다 오른 자녀의 성적, 휴가 때 방문하는 제주도가 더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제는 별 감흥이 없는 성산일출봉도 육지로 돌아가면 곧 그리워질 것이다. 그렇듯 육지의 모든 것도 누군가에겐 간절함이고 감사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부족해야 더 많이 감사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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