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며칠이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영어에서 1월(January)은 ‘야누스의 달’을 뜻한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을 지키는 신으로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한쪽 얼굴은 살아온 한해를 되돌아보고, 다른 한쪽은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새해의 문을 지키며 액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

올해도 대내외적으로 늘 불안한 한해였다. 세상의 악재 속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새해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애써 기분을 추스른다.

이중적인 얼굴을 가진 야누스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야누스와 같이 두 얼굴을 가진 이중적 얼굴이 아니었을까?

반문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르다면 그것은 나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의 다른 면을 보았을 수도 있다. 원하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야누스의 두 얼굴이 되기에 십상이다.

사람들은 뒷모습엔 초연하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사진 에세이집 ‘뒷모습’의 첫 장에 작가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의 앞모습은 마음대로 꾸밀 수도 있고, 거짓 표정으로 내면의 생각을 감출 수 있다. 행동 역시도 얼마든지 가식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평가하는 뒷모습은 거짓이 없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좀 더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은 사람은 앞의 쾌락만 좇다가 뒤에 서 있는 행운의 여신을 영영 발견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만이 그 행운을 잡을 수가 있다. 특별한 시선이 있는 미셜 트루니에의 뒷모습을 읽으며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마음이 만든다. 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끝은 아름답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지난 4년 동안, 문학회 회장을 맡으며 회원들의 앞에 서 있었다. 자리를 내려가는 지금의 나의 뒷모습이 회원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궁금하다. 나에게 던져준 열정이란 소임을 다하고 내려가는 나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노라고 기억을 갖게 하고 싶다.

해가 갈수록 나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외모는 남기고 싶지 않은 노년의 모습이지만, 남겨질 뒷모습을 생각하면 내면을 가꾸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초로의 여인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며 사진사에게 부탁했다. “지금의 이 모습 그대로 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나오게 찍어주세요. 이런 모습을 가지려고 육십 평생을 가꾸어 왔답니다.”

자신의 참모습은 향기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좋은 향기가 날 수도 나쁜 냄새를 내뿜을 수 있다. 사람의 품격이 그 사람의 향기이다. 뒷모습은 살아온 삶의 향가가 빚어내는 자태가 아닐까. 나이가 들어 세월의 흔적은 깊어지더라도 삶의 향기는 더욱더 짙어 간다. 등이 아름다워야 뒷모습이 아름답듯이 자신의 진실을 보여줄 때 뒷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다. 남은 한 해도, 다가오는 새해에도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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