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을 보면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제 7살인데도 나름대로 멋을 부린다. 엄마가 선택해 주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내 자기가 맘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옷뿐이 아니다.

인형, 장난감, 그림책, 화장품, 벽 등 모든 것이 자기 미적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등장한다. 아빠 머리는 이 호기심 많은 아이의 미용 실습도구가 되기 일쑤고 엄마 옷과 화장품은 이 아이의 패션 도구로 쓰여져 엉망이다.

작은아이에게 선택된 아름다움은 나름대로 자기 모습을 만들어나간다. 이 아이는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선택하고 그 아름다움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인간은 삶을 통해 미를 느끼고 실천한다.

생활에서 우리는 아름다움(美)을 느끼고 표현(術)한다. 미가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상태라면 술은 그 대상을 보고 표현하는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술은 어떤 대상을 보고 느껴진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미가 느낌 그 자체라면 술은 표현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미를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것만으로 미술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미술은 표현이다. 또 선택이고 실천이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고 그 아름다움을 선택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이 미술이다.

우리는 미술과 함께 산다. 미술은 인간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다. 인간의 생활이 미적 활동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미적 체험을 하고 늘 미적 활동을 한다.

우리 주변을 보자. 쉽게 생각하여 미술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미술이 존재하지 않은 곳이 과연 어디 있는가.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살 때, 우리는 가자마자 아무 옷이나 집어오지 않는다.

색상, 디자인, 다른 옷과의 어울림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볼펜 한 자루를 사도 마찬가지다. 모나미 볼펜 한 종류만 있었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볼펜 가운데 이왕이면 예쁜 볼펜을 고를 것이다.

다시 우리 주변을 보라. 어떤 물건들이 실용성만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모든 제품들이 미적인 것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상, 컴퓨터, 냉장고, 전화기 등을 보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고려하여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미술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어 보인다.

이렇듯 인간은 누구나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이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당신은 미술의 가장 큰 수혜자인 동시에 미술을 날마다 애용하는 미술애호가인 것이다.

미술애호가로서 당신은 매일 미를 느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술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경향이다.

미술애호가인 당신이 어렵게 느끼는 부분은 미술관 밖의 미술이 아니라 미술관 내의 미술일 것이다. 필자의 의무감도 미술관 내의 미술이 어렵다는 오해를 푸는데 있다.

오늘 가족과 함께 미술관을 찾아 보라. 미술은 느낌만이 아닌 실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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