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프랑스가 사랑하는 작가 레베카 도트르메르는 그림책 ‘자코미누스’의 맨 마지막 장에 주인공 자코미누스 갱스보루의 풍요로운 시간을 사건마다 나열하면서 숫자로 표시해 놓았다.

작고 사소할 수 있는 인물의 삶을 숫자로 정리한 게 독특하고 놀랍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이 소소해도 얼마나 의미 있는지 강렬하고 몽환적인 그림으로도 독자를 유혹한다.

작가는 인물을 34명이나 연필 데생으로 앞표지에 그득 그려놓았다. 그 인물들 마다 이름을 지어 각주로 달아놓았다. 그 인물들은 이번 이야기에서 전부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지만 각자 고유한 삶이 있으리라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을 터이다.

주인공이 태어나자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은 ‘자코미누스 스탕 말로 루이스 갱스보루’이다. 길다란 이름에는 다양하고 풍요롭게 살기 바라는 염원이 가득가득 담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번잡스러우니 줄여서 부른다면 자코미누스가 마땅할까.

그림은 계절의 변화와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을 두 장에 걸쳐 크게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에 맞춰 초상화로도 표현해 놓았다.

첫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아 주인공을 찾아 헤매지만 다음 그림에서는 하얀 여백에 작은 주인공만 그려 풀샷과 클로즈업 기법으로 주인공을 주목하게 한다. 세상은 넓고 그 속에서 때론 주인공이기도 한 우리 삶과 자코미누스는 닮았다. 주위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고 아이로 청년으로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겪는다.

자코미누스가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특별하게 부럽기조차 하다.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기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발을 절뚝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어떠냐며 위로해주는 대목은 따뜻한 할머니가 되려면 어째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토끼 자코미누스의 생은 열두 장면으로 정리되었다. 후천적으로 약점을 가지게 되고, 목발을 짚으니 달리지도 못하는 토끼지만 일상을 도피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자식을 낳아 기른다. 당당하게 살아내는 한 개인의 서사를 통해 어떻게 주인공의 삶이 의미 있는지 보게 된다.

장면을 압도하는 꽉 찬 그림 뒤에는 작은 자코미누스만의 공간이 뒤따르며 그의 삶이 작지만 커다란 의미와 힘이 있음을 강렬하고 세심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의 변화무쌍했던 일상들이 빛바랜 사진첩처럼 때론 어둡게 때론 강하게 끼워져 있고 아몬드 나무 아래서 꽃 한 무덤을 안고 편안히 세상을 하직하는 장면을 우리가 노년에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때도 위로가 될 듯하다.

적어도 자기 생은 주인공답게 잘 살아내고 주인공답게 순연히 죽기를 구체적으로 희망할 시기에도. 세상 모든 목숨이 모두 자기에게는 주인공의 일생이려니, 하여 남도 나도 다 안쓰럽고 소중한 삶이라는 익숙하고도 중한 사실을 감동으로 체득하게 될 만한 책이다.

그림 속 세계는 자코미누스의 말을 통해 그려지는 부분과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는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주인공의 삶이 더욱더 선명해진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