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화장실은 국가 사회의 ‘문화척도’라고 한다. 중국학교에서 5년간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고속도로휴게소의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필자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쾌재를 부른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이만한 휴식 공간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화장실을 측간(廁間)이라고 불렀지만, 사찰에서는 ‘근심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호롱불 하나로 밤을 밝히던 시절, 어느 사찰에서 어두운 밤중에 스님 하나가 자다일어나 해우소를 급히 달려가다가 뭔가 물컹한 것을 밟아서 ‘쭈루루!’ 미끄러져 넘어 졌다. 허둥지둥 얼른 일어나 볼 일을 다 보고 방안으로 돌아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뱀을 밟아서 넘어 진 것 같았다. ‘아! 나의 부주의로 인하여 무고한 생명 하나를 잃게 하였구나! 내일 날이 밝으면 그 뱀을 찾아서 묻어 줘 영혼이라도 위로해 줘야겠다.’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꿈에 뱀이 우굴 거리는 지옥에 떨어져, 악몽에 시달리다가 눈을 떠보니 식은땀으로 온몸을 흥건히 적시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 그곳으로 가 보니, 엇저녁에 밟아 넘어진 것은 ‘뱀’ 때문이 아니라 ‘새끼줄’이였다. 새끼줄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악몽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고생은 없었을 것이다.

만법은 유식(唯識)이란 말이 있다. 모든 존재와 현상들은 인식하는 주체가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을 연구하고 성찰한다는 측면에서 학자들은 유식을 ‘불교심리학’으로 간주한다.

유식에는 삼성(三性)이 있다. 즉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으로서 인식과 존재와 깨달음을 탐구하는 것이다.

‘변계소집’이란 인식의 문제로서 집착(執着)과 미망(迷妄: 어리석음과 허망한 것)의 세계며, ‘의타기성’이란 존재의 문제로서 서로서로 관련을 맺어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세계며, ‘원성실성’이란 깨달음으로서 진여의 세계를 말한다.

‘변계소집성’이란 밤중에 스님이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함으로써 식은땀을 흘리며 헛고생을 한 것이다. ‘의타기성’이란 새끼줄을 새끼줄로 본 것이다. 그러나 새끼줄도 지푸라기가 모인 것이다. 연기로 이뤄진 세계는 조건이 사라지면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말 허망한 것이다. 이것을 ‘가유(假有: 임시로 존재하는 것)’라고 한다. ‘원성실성’이란 새끼줄에서 지푸라기까지 보는 것이다. 지푸라기로는 새끼줄뿐만 아니라, 짚신도, 멍석도 만들 수가 있다. 지푸라기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벼가 자라서 된 것으로, 벼(禾) 속에는 수분과 태양과 토양과 농부의 땀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 진 것이다. 이렇게 근본 진여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우리사회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이다. 개개인은 자기 나름의 ‘변계소집성’에 의하여 살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다 보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호의지하며 살아가는 ‘의타기성’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더 깊이 탐구하다보면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진여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원성실성’이다.

개인적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모두가 하나 되는 진여자성의 세계! 이것이 우리사회가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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