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오창호수도서관 사서

 

이유진 사서.
이유진 사서.

 

빨간 단풍의 끝 무렵, 겨울을 알리는 11월 말, 쌀쌀한 날씨가 주는 만큼 감성이 진해지는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학은 뭐니 뭐니해도 시(時)가 아닌가 싶다.

각자마다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다. 많은 문학의 장르 중 나에게 울림을 주는 장르, 머리에 전구가 켜지게 해주는 장르는 시(時)였던 거 같다. 긴 여러 문장보다 그 작가의 모든 경험과 고뇌가 겹겹이 쌓여 한 문장으로 농축된 글귀가 나에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래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공감 넘어 소장하고 싶어지는….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건 역시 시(時)가 아닐까 싶다.

좋은 시 한 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가.

일상에서 조금 비켜나 때로는 정거장처럼, 때로는 간이역처럼 느긋하게 딴짓하듯, 시 한 편을 차분히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당신이 있다면, 시와 그림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는 시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해 보고 싶다.

박완서 작가의 ‘시를 읽는다’는 박완서 작가의 ‘시를 읽는 즐거움’, ‘좋은 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문장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 작가와 함께 그림책으로 풀어낸 시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니 페이지는 간결하다. 그러나 그림과 시가 주는 영감은 그때그때 처한 환경과 내 속의 번뇌에 따라 그림과 시를 여러 번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등의 시를 읽는다는 진솔한 고백과도 같은 짧고도 강렬한 네 문장을 이성표 작가가 따뜻하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며 맑은 그림으로 화폭에 담았다. 시와 같은 문장이, 시와 같은 그림에 어우러져 한 편의 시처럼 다가들며, 삶 속에 스며드는 시, 늘 곁에 머무르는 예술의 진면목으로 긴 여운으로 남겨준다.

누구에게나 흔들릴수 밖에 없는 속사정의 순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가 기대고 싶을 때 꺼내 보면 좋은 책이다. 낱낱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우리 각자의 사연에 시와 그림이 건네는 조용한 말소리로 잔잔한 위로를 얻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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