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편의·공간 효율성 제고 위해 철거해야” 여론 확산에도 의총서 “철거예산 수용 못해” 합의…시민 반발 거세질 듯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충북지부 관계자들이 8일 청주시청 임시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시청 본관 철거를 촉구하고 있다.(왼쪽) 이에앞서 청원청주미래상생연합이 지난달 29일 옛 시청 본관 철거를 촉구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충북지부 관계자들이 8일 청주시청 임시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시청 본관 철거를 촉구하고 있다.(왼쪽) 이에앞서 청원청주미래상생연합이 지난달 29일 옛 시청 본관 철거를 촉구했다.

 

[충청매일 이대익 기자] 충북 청주시청 본관동 철거 문제가 결국 청주시의회 정쟁으로 번졌다.

청주시의회 의석 절반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8일 의원총회를 열고 철거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뜻을 모았다.

왜색논란·이용편의·공간효율화 위해 본관동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 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잡기에 나서면서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민주당 청주시의원 “철거비용 수용 못해”…사상 첫 준예산 발동 우려

더불어민주당 청주시의원 21명은 8일 의원총회를 열어 청주시가 내년도 본예산에 편성한 본관 철거·처리 비용 17억4천200만원을 수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청주시의원 일동은 의원총회 후 성명을 내 “민선 8기 청주시는 사회적 갈등, 시의회 원내 갈등이 불 보듯 뻔한 데도 문화재청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본관 철거 예산부터 세웠다”며 “본관 철거 예산을 확보하기에 앞서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우선적으로 마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재청 측은 지난달 11일 더불어민주당 청주시의원 9명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문화재청이 시청 본관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조사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문화재청의 1차 가치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다’고 추가적 협의 필요성을 내비쳤다”며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문화재청과의 신속한 협의”라고 촉구했다.

청주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본관동 철거·처리비용은 오는 12~14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도시건설위원회 심사대에 오른다.

더불어민주당이 1석 우위를 점한 도시건설위원회에서는 전액 삭감된 뒤 국민의힘이 1석 더 많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예결위 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예산에서 본관동 철거비용을 뺀 수정동의안을 오는 20일 본회의에 부치면 수정동의안과 예결위 의결안, 2건에 대한 표결이 이뤄진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이 유지되면 수정동의안에는 국민의힘 전원이, 예결위 의결안에는 더불어민주당 전원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점쳐진다.

지방자치법상 가·부 동표가 나오면 해당 안건은 부결 처리된다. 내년도 본예산안 2건이 모두 부결되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이 발동하게 된다.

내년도 예산이 법정기한 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전회계연도에 준해 최소한 경비만 쓸 수 있는 준예산은 1960년 제도 도입 후 한 번도 운용된 적이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국민의힘 소속 한 시의원은 “민주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철거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한 청주시장 발목을 잡겠다는 의도 아니냐”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문화재 보존을 주된 업무로 하는 문화재청에 가치 판단을 내려달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본관의 붕괴 위험성에 대해선 왜 국토교통부에 질의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문화재청 공무원 한마디에 ‘존치 결정’…다시 협의해도 답은 뻔해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내세우는 ‘문화재청 가치 판단’에 대한 여론도 곱지 않은 편이다.

문화재청이 시청 본관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 평가를 내려 존치 여부를 결정해달라는 제안인데, 문화재를 보존하는 관청 특성상 돌아올 답은 뻔하다.

문화재청은 이미 2015년 근현대 공공행정시설 문화재 등록 검토대상으로 전국 15개 청사를 선정한 뒤 청주시청 본관에 대한 문화재 등록신청 구비서류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2017년에도 문화재 등록 절차 이행 등 보존방안 강구에 대한 협조 공문을 보냈다.

2018년 시청사건립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문화재청 담당자와 문화재 위원이 “청주시가 본관 철거를 결정하면 문화재로 직권등록하겠다”고 언급함에 따라 만장일치로 존치 결정됐다. 회의 참여자 사이에서는 문화재청 압박에 따라 존치 결정을 내렸다는 의견도 뒤늦게 나왔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 국가등록에 관한 지침’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지침은 △외래 양식을 모방했거나 진위가 불명확한 경우 △보수·복원·정비 등으로 본래의 문화재적 가치가 크게 떨어진 경우 △문화재적 가치가 있더라도 문화재 등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경우를 국가등록 제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주시청 본관은 이 조건에 모두 해당한다.

본관이 청주를 상징하는 주성(舟城)을 본떴다고 하나 설계자인 고 강명구 건축사의 직접적 언급이 확인되지 않았다. 도리어 옥탑은 후지산, 1층 로비 천장은 욱일기, 난간은 일본 전통양식을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1층 로비 천장 문양은 구조 부재를 제외하고 16가닥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태양 광선 형태의 욱일기 가지 개수와 같다.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설계자가 일본 양식을 모방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최소한 진위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포함된다는 평가다.

보수·복원·정비로 인한 가치 훼손도 명확하다.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3가의 시청 본관동은 1965년 연면적 2천1.9㎡ 규모의 3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뒤 1983년 4층으로 637.2㎡ 증축됐다.

3층 옥탑은 4층으로 부자연스럽게 이동됐고, 건물 내부는 수차례 개·보수돼 원형을 잃었다. 심지어 건물 내부에는 비데와 스마트 도어 같은 현대식 시설도 생겨났다.

●“왜색논란·이용편의·공간효율화 위해 본관동 철거해야” 여론 확산

왜색 논란에 휩싸인 충북 청주시청사 옛 본관동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충북지부는 8일 시청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 이용 편의와 신청사 공간 효율성 제고를 위해 옛 본관동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시청 본관은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D등급을 받았다”며 “시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철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기준에도 어긋나므로 존치 의미가 없다”며 “국내 여러 지자체에서 일제 식민지배 잔재를 청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주시만 역행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 오천도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왜색이 짙은 본관을 존치하자는 이들은 개인자산을 털어 보존하라”며 “청주시 발전에 해를 끼치는 시민단체가 있다면 가차 없이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 대표는 지난달 본관 철거 반대 입장문을 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분과위원장 9명을 위계에 의한 직권남용, 명예훼손(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고발한 뒤 고발인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원도심 주민과 상인들도 본관 철거를 촉구했다.

청주시 중앙동·성안동 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원도심 활성화 추진단은 “시청 본관동 존치 주장은 문화재 가치를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는 문화재청의 무책임한 권고에서 시작됐다”며 “청주시는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본관동을 즉시 철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본관 철거에 동의하는 시민서명부(3천28명)를 청주시에 전달한 뒤 2차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남주동·남문로 가로구역정비사업조합도 “청주시청 구청사가 문화재면 우리집도 문화재다”, “일본 건축양식이 문화재면 우리도 일본인인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본관 철거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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