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첫눈이다. 평소 20분이면 오는 출근길이 1시40분이나 걸렸다. 많은 눈이 아니었는데 길이 미끄러운지, 아니면 사고가 났는지, 귀성길 고속도로처럼 차가 나가지 않는다. 제시간에 가야 할 곳이, 목표가 있는 사람들에게 눈은 더는 낭만이 아닌 듯, 버스에 탄 승객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식당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멍하니 내리는 눈을 보노라니, 저 눈을 맞으며 아무도 밟지 않는 눈길을 걷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리는 눈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새벽에 끝난 축구 얘기가 한창이다. 평일의 점심 식당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각자의 핸드폰을 보거나 애꿎은 물컵을 만지작거리는 풍경이 일상이다.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고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분위기도 아니다. 그런데 같은 관심사가 생겼으니 축구 얘기를 안 할 이유가 없다.

평소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월드컵에는 흥미를 느낀다.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에 뜨뜻미지근한 자기 모습을 들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에너지를 발산한다. 바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열열한 열정과 흥분의 에너지를 쏟아본 적 있는가. 그것도 전 국민이, 전 세계가 같은 관심사로 하나 된 적 있던가. 축구는 일종의 마약처럼 너와 나를 하나로 연결하고 죽어있던 세포를 살려내고 심장을 뛰게 한다. 마약의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마약의 황홀경을 맛본 사람은 쉽게 끊을 수 없다. 그래서 시장 규모가 크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자신의 의지로 흥분과 분노를 선택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것은 삶의 동력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마니아가 생겨나고 시장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지배구조가 형성된다. 올림픽을 포함해 각종 프로스포츠 경기의 생존이 이런 구조를 따른다. 그러나 밖에 존재하는 열정, 내 안에 있지 않은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월드컵은 곧 끝날 것이고 대상이 사라진 우리는 평소처럼 마음을 닫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권력은 외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권력 구조에 신경 쓰지 못하게 색다른 마약을 제공한다. 흑과 백, 나와 너로 구분되는 패권의 구조는 외부 대상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를 발산하게 만든다. 우리의 역사가, 정치가 그래왔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 얘기에 여기저기 언성이 높아진다. 모두 정치평론가, 논평가가 된다. 정치의 흑백 논리는 친구, 동료 심지어 가족들마저 갈등을 조장한다. 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념만이 정의라고 떠드는 몇몇은 유명인이 되기도 한다.

어디 정치뿐이랴. 우리는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관심사를 타인에게 돌린다. 사회구성원 간, 가족, 부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드라마 ‘해방일지’처럼 우리도 타인의 시선, 가족, 연인이 아닌 나에게서 나의 존재성을 찾고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네가 아닌 나와 대화하고 나를 발견하는 삶의 주체가 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 16강전을 보느라 잠 설친 이들과 외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사상가는 첫눈을 보고 설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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