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다슬깃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투병을 시작한 지 어언 일 년, 코로나로 면회도 어려웠던 시기에는 오로지 가족만이 그녀를 가까이 차지했다.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드는 고통은 그녀의 삶을 연장하는 혹독한 대가다. 그녀에게 지난 일 년의 삶은 다른 이의 십 년 무게와 같았다.

그녀가 먹을 만한 음식을 장만하여 그녀의 대문 앞에 놓고 가기를 몇 번, 오늘도 다슬깃국을 끓여 몇 숟갈 먹이고 나오는 길이다.

그녀를 두고 무거운 마음을 털어낼 겸 산성으로 향했다. 등산화가 아닌 낡은 운동화가 조금은 미끄러웠지만, 마음만 가벼워진다면 불편함은 참을 만했다. 성벽 위의 등산로는 천년의 흔적이 잠들어 있듯 고요만이 가득했다.

가끔 찾아오는 이곳은 어떤 날은 힘에 부쳐 버겁기도 하고, 어떤 날은 머릿속에 반짝이는 생각으로 답을 얻기도 했다. 자연 앞에서는 늘 숙연해진다. 수백 년을 버티고 버텨내어 거목이 되고, 어렵게 꽃도 피우는데 그녀도 살아나야 하지 않겠냐고 애원해 본다.

오늘은 오로지 그녀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녀만을 생각한다.

성벽 아래 아스라이 둘러 퍼진 돌담이 그녀의 지나온 길을 쌓아 놓은 것만 같다.

그녀는 나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다. 나와는 달리 장녀로서 집념이 강하고 카리스마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근무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느지막이 야간 대학을 졸업했다. 일찍이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다.

성실함과 사교성이 좋았던 그녀는 하는 일에 좋은 성과를 내고 승승장구했다. 결혼도 잘 하고 자식들도 잘 키우고 아늑한 전원주택을 마련도 했다. 그러던 지난해, 갑자기 암이라는 늪에 빠졌다. 이제 이순을 넘긴 나이인데 이승의 기한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그녀를 데려갈까 봐 나는 벌써 슬퍼진다.

서문에 올라서니 하늘을 비질하는 구름이 길을 안내한다. 구름이 지나간 하늘이 더욱 파랗다. 하늘이 높게 보이는 것은 공기 중에 먼지가 적어 빛의 산란이 적기 때문이며, 하늘의 색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아주 높은 곳의 미세한 공기 분자에서 태양 빛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만약 산란이 없다면 하늘은 검게 보였을 것이다.

내가 절망할 수 없는 것은 그녀가 발하는 빛의 산란으로 늘 행복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훠이훠이 내젓는다. “병마야 물러가라” 그녀를 향해 쳐들어오는 암세포를 물리쳐야만 한다.

산성은 적을 방어하거나 백성들을 피난시키기 위하여 쌓는다. 암의 왜란으로부터 점령당한 그녀를 이 성안에 꼭꼭 감추고야 말리라. 그러나 그녀의 몸속을 차지하는 암세포는 적병처럼 막강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야위어가는 그녀를 잃을까 두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다.

오후, 산성의 얼굴은 성숙한 여인이고, 가을볕은 무심하게 빛나고, 소나무는 아직도 성성하다. 이 고통을 이기고 내년이면 그녀와 함께 나란히 서서 저 활기찬 도시를 내려다보리라.

성벽은 그냥 돌이 아니고, 그냥 벽이 아니다. 믿음의 벽이다. 둘은 서로의 성벽이었다. 나는 믿음의 군사 되어 성큼성큼 성가퀴를 걸어가며 성을 맴돌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