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청주시 경덕초 교감

요즘 6학년은 뉴스 만들기 수업을 하는 모양이다. 국어와 사회교과를 통합하여 학교 안팎의 이슈를 발굴하여 취재 보도하는 모양인 듯하다. 학생들이 인터뷰하러 갈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담임교사의 연락이 왔고 이후 학생 5인조가 교무실로 왔다.

편집과 앵커는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관망했다. 뉴스 주제는 ‘학생들의 교내 엘리베이터 사용에 대한 인식조사’였고 교감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학교의 시설은 구성원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니 당연히 학생들도 엘리베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순간 5인조는 자기들끼리 눈빛을 빠르게 교환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아무 때나 마구 타게 되어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꼭 필요한 사람이 못 타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할 거냐고 작가가 반문했다.

아직 고장난 적은 없지만 고장이 난다면 고치면 되고, 공공시설이니 누구는 타고 누구는 못 타게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단지 아프거나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이 우선사용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듣고 있던 앵커는 피식 웃는 반면, 촬영은 장비를 내려놓으며 아프지도 않고 무거운 짐을 들지도 않았으면서 아무 때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이들이 문제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타지 못하게 하는 게 맞을까? 학교가 아닌 다른 건물의 엘리베이터에도 탈 사람과 타지 말아야 할 사람이 구분되어 있는가? 학원은? 아파트는? 왜 유독 학교 엘리베이터에 대해 학생의 탑승이 고민거리인가? 등의 나의 연속 질문에 5인조는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지고 돌아갔다.

기세등등하게 인터뷰를 하러 온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도리어 혼돈의 바다에 빠뜨린 것이 미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을 주장하는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교 안과 밖이 다른 기준으로 따로 돌아간다면 과연 수업은 가능한가. 교과와 세상을 연결하는 융통합 수업은 과연 가능한가.

교실 안에서 발랄하게 퍼져나갔던 5인조의 생각이 교실 밖의 엘리베이터에 대해서는 협소하고 근엄하게 적용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머리를 맞대고 뉴스거리를 토론하고 소외 없이 참여하도록 역할과 권한을 정하여 계획한 일을 완수하는 당당하고 야무진 태도가 수업을 넘어 생활에서는 작동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학교가 그동안 학생들의 학습권과 수업에 집중하고 지원한 만큼 그들의 생활과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가진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았다. 학습이라는 한 우물만 파놓고 그 안에서만 놀도록 한 건가. 가려내고, 솎아내어 구별하고 배제하지 않고 다양하게 포함하고 포용하는 넉넉한 학교가 아니었나 더듬어보았다. 배운대로 학교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던 아이들은 규칙은 지키지만 손해 보는 기분을 갖게 되고, 탑승을 주장하는 아이들은 버릇없게 보이도록 오래 방치한 무심함이 최신식 엘리베이터에 남아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수히 학교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고 내리고, 바쁜 척하며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열심히 눌렀던 내 모습이 엘리베이터 거울에 그대로 비쳤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