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겨울철접어들면 자주나오는소식이 눈때문에길 이미끄럽다는것이고, 그로인해햇볕이잘안드는 안쪽의길바닥때문에 큰길뒤에있는작은길들을 <이면도로>라고부르곤합니다. 말인즉슨, 틀린건아니지요. 그러나이렇게생짜로만들어낸말들이 세상을뒤덮는것은 그전에그런말을만들어쓴분들에대한 예의가아닙니다. 그런말을만들기전에 그런뜻으로만들어진말이없는가 하는고민을한번쯤해보는 것이 좀더좋은일아닐까요? 저만그렇게생각하나요? 알수없습니다.

<이면도로>라는말로나타내려는뜻은 <뒤안길>이란말에다들어있습니다. 이런말을찾아서 쓸생각을하지않고 대뜸한자말로조합해서 급히만들어쓰는것은 결코바람직한일이 아닙니다. 방송에나오는말들을보면, 특수분야에서쓰는용어이거나 없으면새로만들어쓰는말입니다. 어느경우에든 좋은현상이라고 할수없습니다. 대중들이쓰는평범함말중에서 골라서쓰는것이좋겠습니다.

2020년3월, <코로나19>사태가벌어진뒤 이것이기침이나말을할때 입에서나오는아주작은물때문에 다른사람들에게 전염된다는것을알고는 언론에서는대뜸<비말(飛沫)>이라는말을썼습니다. 아마도감염병학회나의사들은 이런말을썼겠지요. 하지만우리가 평소전혀쓰지않던말이어서 많은비판을받았는지 한방송사에서는이<비말>대신에 <침방울>이라는말을 쓰기시작했습니다. 그래서9개월이지난지금에는 <비말>과<침방울>이 반반정도쓰이는중입니다.

방송이굉장히큰영향을미치는오늘날, 거기에쓰인말들이 우리의말글생활을 바꿉니다. 그주변에국어학자들이 적잖이있을텐데 이런이상한일들이 자꾸일어나는것을보면, 전문가들조차도우리말에대해 무언가큰혼란에빠져있는것이아닌가하는 이상한생각까지듭니다.

<물류>라는말이나타난것은, 얼마되지않습니다. 제기억으로는 1980년전후해서나타난것으로압니다. 그전에는 <유통>이나<양행>이라는말을 썼습니다. 유통이란 우리말로‘흐름'을 뜻합니다. 사람에게필요한것들이 어떤방법을통해서 삶의현장으로흘러드는 모든것을가리키는말입니다. 이런유통을주도하여 돈벌이하는행위를 <양행>이라고합니다. ‘유한양행'같은회사에 그이름이나타나죠. 실제로우리나라에 서구자본주의가밀려든 일제강점기에는, 이양행이라는말이 최신유행어처럼쓰이기도했습니다. 회사들마다00양행이라는이름을썼죠.

그런데1980년대로접어들면, 대형유통회사들이 규모를더욱키우면서 엄청난창고를짓고 다국적기업으로발전합니다. 이런대규모상품과자본의이동을나타내는 새로운말이필요했던모양입니다. 그래서뜬금없이어느날나타난말이 <물류>입니다.

이물류란말이 못마땅한것은 그것이<유통>이라는말과 차별성이거의없다는 것입니다. 물류란, 굳이글자대로풀자면, 물건의흐름이라는뜻인데 오히려<유통>이라는말만도못합니다. 물건이스스로움직이는경우는없습니다. 반드시누군가옮기죠. 지게차기사가옮기든 컨테이너차운전자가옮기든 컨테이너를산처럼쌓아서 배로움직이든 어쨌거나누군가그걸옮기는사람이 있기마련입니다. 그렇게행위의주체를빼고서 ‘물건의흐름'이라고한다면, <유통>이란말보다도더못한 이상한말아닌가요?

물건들은스스로움직이지않습니다. 그래서물류라는말이 적절치못하다는겁니다. 없어도될말을 굳이만들어쓰는것은 사회의언어질서를 흔드는짓입니다. 어쩔수없는것이라면 새로만들어써야겠지만 있는걸굳이알면서도 새로뭔가만들려는것은 유치한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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