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구절초가 만개하는 가을! 영평사가 구절초에 묻혀있다. 이 계절, 소박하고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는 꽃은 더 있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해국, 들국화다. 보는 이의 눈을 아리게 하는 꽃들이다. 모두가 깨끗한 에델바이스를 닮았다. 오늘처럼 시시때때로 일곱 음계를 타듯 바람이 부는 날에는 저 산등성이를 넘어 ‘에델바이스'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폰 대령의 감미로운 노래 뒤에는 나치를 피해 알프스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비장함과 절박함으로 점철되어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절간 진입로에서 시작된 구절초 군락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과 요사채 뒤편 산비탈에서 절정을 이뤘다. 법당 주변은 온통 구절초 꽃밭으로 하얀 눈이 내린 것 같아 보는 이에게 눈 보시(布施)를 한다. 이곳에는 내가 찾고 있던 풍경이 있었고, 잃어버린 정신적 유산을 되찾은 듯 친근하고 익숙한 내음이 있었다.

더 많은 꽃을 찾아 경내를 벗어나 사찰 뒷길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푸른 못물 가까이 억새꽃 반영이 흔들리고 보랏빛 벌개미취 사이로 정숙하게 피어나는 구절초가 부부의 연을 맺은 모습이다. 구절초 매디 매디에 눈물로 비친 꽃망울은 고향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처럼 기억 어느 곳이나 무더기로 살아났다. 가을이 오면 떠나간 사람이 더욱 그리워진다. 혼자 남은 삶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그대 설움만 할까, 어디를 가나 감출 수 없는 허허로운 마음에 그대가 있는 아득한 별나라로 배를 저어가다 보면 구절초꽃 무리가 뽀얀 옥양목 이불이 되어 온몸을 덮어 준다.

박용래 시인은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 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라고 구절초를 노래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조금 모자란 여인으로 등장하며 강원도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며 순정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여배우 머리에 꽂혔던 꽃이 바로 구절초이다.

음력 9월이 오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사랑과 정성으로 채집해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시집간 딸을 위해 처마 밑에 건조 시켜 놓았다가 딸이 해산하면 정성껏 달여 주시곤 했던 어머니, 꽃은 꽃말조차 순수, 또 어머니의 사랑이듯이 꽃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져 온다. 깊어가는 저녁, 지금은 아니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숨어 우는 바람 소리로 옷깃을 헤집는다.

오늘 하루, 차가운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따뜻하게 위로받는 하루였다. 이제는 ‘구절초' 하면 영평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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