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중간고사 기간에 학생들은 오전에 시험을 마치고 하교한다. 학생들이 없는 오후에 교사들은 서술형 답지 채점을 하거나 연수를 한다. 수업이나 대입 지도에 관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의도 듣고, 교육과정 운영이나 다양한 주제로 회의를 한다.

시험 기간 중 하루는 교직원 힐링 연수가 있다. 이번에는 문경새재를 함께 걸었다. 시월 중순, 서서히 단풍이 들어가고 있는 새재길은 아름답고 고적(孤寂)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오니 스치는 바람마저도 예사롭지 않고 상쾌했다. 평일이어서인지 산길은 더욱 호젓했다.

3관문에서 1관문까지 두 시간 가까이 쉬엄쉬엄 걷고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좋다, 참 좋다’ 였다.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제몸을 불태우며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학교 밖에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세상이 이리 아름다우니 더 이상의 축복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충주에서 경북 문경 새재까지는 자동차로 40분 거리라 평소에도 자주 찾는다. 새재길은 꽃피는 봄이나 눈 내리는 겨울이나 사계절 어느 때나 좋은 느낌을 준다.

지난 여름 이후 걷기에 몰입해 있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내 몸을 살펴보니 인생 최대의 몸무게와 하루 다섯 알 이상의 약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주호를 바라보며 걷는 종댕이길은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중앙탑 주변의 호숫가를 걷는 길은 조명이 이쁘고 아름다워 밤에도 종종 찾아가 걸었다. 탄금대공원이나 집 근처 학교운동장을 틈나는 대로 걸었다. 처음에는 단지 다이어트를 위해 걸었지만 차츰 걷기의 묘한 매력에 빠졌다.

속상한 일이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괴로운 날, 걷고 또 걸으면서 그 상황을 돌이켜보고 곱씹어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고통을 덜 수 있었다. 무거운 과제를 앞두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때 걸으면서 하나씩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곤 했다.

배우 하정우가 쓴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에서 ‘힘들다 걸어야겠다. 바쁘고 지칠수록 걸었다’는 말이 온전히 이해가 되었다. 하정우는 걷기의 좋은 점을 ‘기후와 온도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폐부로 느낄 수 있다. 내 몸과 마음을 단단히 유지할 수 있다.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배변을 원활히 할 수 있다. 걷기는 어떤 도구도 필요 없다’ 는 점을 들었는데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다이어트는 걷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보너스와 같다.

무엇보다 내 경험을 통해 발견한 걷기의 매력은 내 보폭으로 끈기 있게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에 있었다. 인생의 길은 언젠가는 그 끝이 있을 것이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꾸준하게 걷다 보면 이겨갈 수 있고, 이겨가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을 걷기를 통해 깨달았다. 기분이 좋은 날은 기쁘게, 외로운 날은 쓸쓸하게, 고민이 많은 날은 고민을 털어내려, 스스로 건강한 존재를 확인하며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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