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1929년 ‘조선의 궁술’을 기록한 분들은 이상하게도 중국의 책들을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사경’을 비롯하여 ‘사법비전공하’ 같은 책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소개된 글이었고, 실학파들의 글에서도 그런 사법에 대한 묘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 측의 기록을 전혀 참고한 흔적이 없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별로 참고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활쏘기는 조선이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실학자들도 ‘중국의 창, 일본의 칼과 견주어 조선의 활’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조선 사람들로서는 이 세상 어디에도 배울 만한 활쏘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활은 두 가지 기능으로 우수성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멀리 쏘기’가 그것입니다. 이 두 기준으로 보면 세계의 어느 활도 우리 활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먼 과녁 거리가 60미터이고, 중국도 100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양궁은 올림픽 종목이 70미터이고, 그렇게 통일되기 전의 거리로는 90미터 경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습용 활(유엽전)의 과녁 거리가 150미터입니다. 멀리 쏘기로 하면 그 활로 요즈음 쏴보아도 300미터를 쉽게 넘어갑니다. 애기살로 쏘면 용산 나루에서 동작나루까지 날아갑니다.(징비록) 세상의 그 어느 활도 이런 활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사법서를 참고하려고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장난삼아 쏴도 300미터를 훌쩍 넘어가는 기술을 지닌 사법을 설명하는데, 60미터 겨우 날아가는 일본 활이나 90미터 날아가는 양궁의 사법 이론으로 설명해봤자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궁술』을 쓰던 분들이 당시에 세계 최고의 사법은 우리 활의 그것이었음을 아주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 ‘조선의 궁술’을 넘어섰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사법을 설명하는데 주로 인용하는 것이 조선 시대 간행된 사법서입니다.

예컨대 ‘사법비전공하’나 ‘정사론’ 같은 책을, 지금 자신들이 쏘는 개량궁 체험으로 설명하고, 나아가 중국의 사법서인 ‘사경’이나 ‘무경사학정종’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체험을 정당화하는 방식입니다. 심지어 『조선의 궁술』을 넘어섰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며 자신들의 사법을 동영상으로 올려 전 세계에 대고 자랑합니다.

‘조선의 궁술’ 대로 쏘려고 30여 년 애써온 제가 보기에, 그들의 동영상 동작은 ‘조선의 궁술’을 넘어서기는커녕 <조,선,의,궁,술>의 지읒(ㅈ)도 모르는 수준입니다. 세상에 가장 용감한 사람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같은 동호인들이 대신 부끄러워합니다. 하하하. 개량궁에 카본살을 쓰며 전통 사법을 논하는 꼬락서니는, 낯이 뜨거워서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똥물을 뒤집어쓴 느낌입니다.

몸이 따르지 않는 사법서는 에스에프(SF) 소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SF소설은 무협지보다 더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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