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주성 변호사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학적 이론을 총동원하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법률 이론을 총동원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환자를 살리고 싶고 그 누구보다도 재판을 이기고 싶어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은 존재하고 그 앞에 좌절하는 숙명을 겪고는 합니다.

자 여기 아주 젊은 대장암 말기 환자가 있습니다. 그에게 기대란 분명 앞길이 창창한 젊은 나이인 만큼 완치인 것이고, 매우 정상적인 의사라면 수술, 항암치료 등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할 것입니다. 그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수학적 확률이 알려주는 것처럼 병기가 깊은 암일수록 그 완치의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법률 또한 이러한 문제는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면 누구나 구속이라는 결과를 피하고 싶어합니다. 소위 판결의 선고와 동시에 그 자리에서 구속되는 것을 법정구속이라고 하는데 변호인이 피하고 싶은 최악의 결과입니다. 저 또한 경험이 많지 않은 변호사시절 처음 의뢰인이 법정구속을 당하게 되자 간 첫 구치소 접견에서 한 시간 넘게 머뭇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치 구속은 그 기간동안 영구적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기에 사회적 사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구속은 누구나 반드시 피하고 싶은 기대를 가진 것인데, 사실 어느 정도 경험을 갖춘 변호사라면 사건을 통해 파악하는 몇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구속을 피할 수 없는 사건 정도는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 중 하나가 이 기대 즉 구속되지 않는 것과 현실 구속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의 괴리를 의뢰인이 수용하지 않을 때입니다. 즉 그 현실이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기대하는 결과만을 바랄 때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칫 최악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어쩔 수 없이 무리하고 공격적인 변호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예를 들면 무리하게 무죄 주장을 하거나 사안에 맞지 않는 양형변론을 하게 되고 이는 자칫 반성하지 않는 태도 등으로 평가되어 훨씬 무거운 형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적절한 변론을 통해 구속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을 최소화 하는 기회이 상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어느 것이 정답인지 즉 기대를 택하는 것인지 현실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 수 없습니다. 말기암의 경우에도 그 완치율이 0이 아닌 것이고, 간혹 적극적인 변호를 통해 예상외의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를 모든 사례에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미미한 완치율에 기대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독한 치료를 모두 버티게 하는 것 혹은 의뢰인이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예상됨에도 공격적인 변론만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제가 변호사를 그만 둘 때까지 맡을 수 많은 사건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제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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