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하여 성찰하는 길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올바르고 명확하며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추구하는 비판적 정신을 가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많은 연구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비판적 사고에 의한 올바른 사고와 행동을 익힐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나 신념 때로는 오만과 편견이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직을 물러나면서 사과 한마디 없이 물러났다. 이를 두고 당시나 후대인들은 그의 인간됨을 회자하고 있다. 똑같이 전두환 전 대통령도 죽을 때까지 광주 사태에 대하여 한마디 사과도 없어서 광주 사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종종 말로 사과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생각하여 사과하는 대신에 일본과 같이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사과에 대하여 두 가지 문화가 있다. 사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는 사회와 사과를 하면 책임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는 사회가 있다.

사과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는 인도에서는 하녀가 그릇을 깨더라도 하녀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릇이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서 깨졌다거나, 깨질 때가 되어서 깨진 것이라고 우기면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의 경우에는 사과하면 어느 정도 정상을 참작하고 더는 논란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회의 장관 인사청문회를 보면 거의 모든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나 불법적인 주소지 이전 등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과라는 말 대신에 유감이나 죄송하다는 표현으로 완곡한 어법을 사용한다. 그래도 더는 문제를 키우지는 않는다.

지금 대통령의 막말 파문과 관련하여 야당은 외교 참사라고 하면서 책임을 지우겠다고 한다.

반면에 많은 국민은 대통령이 신중하지 못한 말에 대하여 완곡하지만, 국민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면 100일 갓 넘은 대통령에 대하여 24%라는 최저의 지지도를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과에 대하여 매우 인색하다.

특히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한 사과는 매우 인색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깊은 권위주의 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이 되지 못한다.

에릭 시걸은 ‘러브 스토리’에서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사과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이 대통령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라도 사과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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