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지난주에 00문학회 수필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강사로 모신 유한근 교수의 “수필과 인간미”라는 주제는 시작부터 그 열기가 뜨거웠다. 이 시간을 통하여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수필은 자신의 고백이며, 자신의 체험과 내면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

좋은 수필은 자기 체험과 사색이 상상력을 통하여 독자를 감동하게 해야한다.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나무의 심과도 같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수사학≫에서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로 보았다. 즉 이성, 감성, 믿음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 가장 신뢰를 주는 것이 ‘에토스’라 했다. 수필에서도 ‘에토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걸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한다.

수필을 잘 쓰려면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 상상력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체험을 하나의 형상으로 통일시켜야 심리적으로 안정된 글이 된다.

상상력의 거장 코울리지는 1798년 워즈워드와 더불어 영국 낭만파의 기수로 떠올린다. 코울리지는 ‘다원적이고 다면적인 과제들을 하나의 관점에서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 상상력이다.’라고 했다. 그는 사상과 사물과의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상상력에서 찾아냈다.

상상력을 피력한 또 한 사람, 윌리엄 블레이크이다. 그는‘상상은 영혼의 감각이다‘라고 했다. 화가이자 시인인 그는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자연의 외관만을 복사하는 회화를 경멸했다. 또한 일반으로 보는 무감동한 작품을 부정하며, 이론을 벗어나 자신의 내면적인 상상력을 표현하여 신비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상상력은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게 하며 추상적인 면을 보게 하고, 대상물에 대한 관념을 보게 하며, 디테일한 면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무한한 우주론적 또는 초월론적인 발전을 초래한다.

수필작가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무형을 형상으로 볼 줄 알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까지 보려는 내면적, 심리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이같이 관찰과 통찰과 성찰이 융합되어야 좋은 수필가라고 한다.

이맘때면 문우의 수필집을 자주 받아본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그저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일기나 보고서를 쓰듯 무의미한 체험으로 페이지를 메꾼 글을 볼 때도 있다. 이것은 사건을 기록한 잡문과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책은 그 작가를 믿고 보게 하는 책이 있다. 이런 글을 읽고 나면 지금 당장 달려가 그 작가와 만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렇다면‘나의 독자는 과연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라고 반문해보지만, 나의 갈 길이 멀다는 걸 안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나는 “왜 수필을 써야만 하는가?”를 질문하자

강사는 답했다.“내면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메시지는 수필은 자기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실현에 이른다. 삶의 고뇌가 고뇌로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뇌를 통해서 진정한 삶을 배우고 환희 도달할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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