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어제처럼 해가 뜨고 어제처럼 잠에서 깼다. 그래도 명색이 추석인데 냉동 밥을 해동해서 먹을 수는 없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있는 재료 모아서 전을 몇 개 부쳤다.

마트에서 사 온 송편도 몇 조각 내놓고 선물로 받은 식혜도 따라 놓으니 제법 그럴 듯했다.

이번에는 명절이라고 북적거리기는커녕 아무도 없이 혼자 맞는 추석 아침이 단출하니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는 명절 때면 며칠 전부터 그릇을 닦고 이불 호청을 시치고, 송편을 찔 솔잎도 한여름에 미리 따 놓았다. 꽉 막힌 도로에서 몇 시간씩 밀려도 귀성길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친척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서로의 안부로 달뜬 마음에 집 안은 금세 북새통이 되었다.

이맘때가 되면 TV에서는 토크쇼가 한창이다. 명절을 보내는 고부간의 견해 차이가 팽팽하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모두 옳다. 며느리로 지내온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보니 더욱 공감이 간다. 해가 지나도 이런 주제는 사이좋게 지내는 수밖에는 결론이 없다.

결혼을 하고 몇 해가 지났을 때다. 명절이면 으레 시댁에 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친정에서의 명절이 그리웠다. 분위기가 전혀 다른 시댁 명절은 어떠한 흥분도 설렘도 없었다.

그냥 의무만 있을 뿐, 그 속에서 나름대로 소소한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친정에 들르면 보고 싶은 형제들은 모두 돌아가고 난 뒤였다. 친정 부모님 차례를 지낸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쩌다 시댁에 가지 못하는 때에는 시어머니는 그 서운함과 쓸쓸함을 감추려 애를 쓰시는 모습이 전화기 너머로 훤히 보였다. 나는 마치 죄인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며느리와 통화를 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아들이 연휴에도 근무라 차례를 지내러 갈 수가 없단다. 이참에 친정에 다녀오고 싶다며 머뭇거린다. 아이들 짐도 만만찮을 텐데 혼자서 어떻게 갈까 걱정이지만, 명절을 친정에서 지내고 싶어 했던 예전의 내가 생각나 그러라고 했다.

명절 때마다 각자 혈육을 찾아가는 풍습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며느리는 친정에 가서 부모 형제 만나고, 아들은 아들 대로 가족끼리 지내는 것은 어떨까. 올케도 친정으로 가서 형제들과 차례 지내고 시어머니도 시집간 딸들이 찾아와 집안 전통대로 함께 보내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를 낳아주신 부모는 뒷전에 두고 얼굴도 뵌 적 없는 시댁 어른 차례를 지내느라 심신이 고단한 며느리에게 명절은 없다. 더구나 친정에 우환이라도 있다면 시댁에 앉아있는 며느리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때마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누가 옳으네 그르네 할 것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모두가 기다려지는 명절을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올케를 친정에 보내고 우리 오남매가 아버지 차례상을 준비하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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