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언제나 정겹고 반가운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오랜만에 했다. 미원초 50회로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이름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베이부머 세대로 시골이었지만 면 소재지 학교라 한 반에 60명씩 3반까지 180여 명이 졸업한 비교적 큰 학교다.

졸업한 지 52년째로 그간 유명을 달리한 동창들도 있고, 연락되는 친구들은 약 3분 1 정도 되지만, 매년 그중 절반 정도 참석하고 있다.

그 시절은 모두 어려웠던 시기라 부모 따라 타지로 멀리 전학 가거나 중도에 자퇴하는 친구도 많았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알려 준다. 아득히 먼 옛날 같기도 하고 어제의 일처럼 순간 지나간 반세기다.

어려운 상황에서 다닌 동창들이라 친구 간에 애틋함도 있고 추억거리도 많아, 동창회 땐 옛날얘기로 시끌벅적하면서 화기애애하다. 춥고 배고팠던 옛 이야기를 하다 보면 때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일년 내내 꽁보리밥만 겨우 먹다 가을에 벼 수확 뒤 힌 쌀밥에 청국장은, 당시 최고성찬이었고 꿀맛이라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보릿고개라는 배고픔을 겪은 세대라 음식의 중요성을 알고, 요즘처럼 잘 입고 잘 먹는 시대를 살며, 대부분 감개무량 해하고 풍요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고 산다.

그 시절 추억을 더듬어보면 하루해가 짧고 짠하다. 책은 보자기에 쌓아 다녔고 가방 들고 다닌 친구는 많지 않았다. 운동화 신고 다닌 친구 역시 별로 없었고 검정 고무신이 대부분이었는데, 닳고 떨어지면 꿰매 신고 다녀 수시로 벗어지기 일쑤였다.

겨울에는 교실에 석탄이나 나무로 난로를 피웠고 난로 주변은 특석이었지만, 수시로 도시락을 타지 않게 돌려놓는 당번으로서 저마다 일화가 많다.

여름 장마철엔 계곡이나 넓은 개울을 건너는 지역 학생들은 중간에 일찍 귀가시키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학교를 오지 못하기도 했었다. 우산은 비닐우산이라 바람불면 찢어지기 일쑤였고, 그나마도 없으면 비료 포대 구멍 내서 뒤집어쓰고 다녔다.

이번 모임은 그동안 코로나로 못 만나다가 2년여만의 만남이라고 하니, 유수와 같다는 세월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했다. 지난번 모임 때 차기 회장을 하라고 하였던 터라 안 한다고 뺄 수도 없고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부득이 회장을 맡게 됐다.

회장지명을 받고 총무는 누구하고 할까? 몇 명 타진해 보았지만, 모두 바쁘고 사유가 있어 선뜻 찾지 못하던 중,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에게 신신당부하여 겨우 인수 받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기왕에 맡았으면, 친구 간에 친목도 더 도모하면서 동기회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해마다 나이 먹어감에 몸이 쇠약해지다 보면 참여율도 떨어질 것이란 막연하지만 현실적 생각에서다.

고민 끝에 임원진을 확대하기로 마음먹고 부회장을 남녀 한 명씩 두고 총무를 사무국장으로 승격하고 감사를 두는 등 임원진을 늘렸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듯이 여럿이 함께하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참여율도 좋고 모임이 활성화될 것이란 믿음에서이다.

동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큰 인연을 맺은 가까운 사이인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씩 안부 전해가며 모임때는 연일 제치고 참석해 반세기 전의 추억을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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