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올해 북카페를 새로 조성했다. 교실 다섯 칸 정도를 터서 사방으로 책장을 설치하고 넓은 책상을 여러 개 두어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부할 수 있는 넓은 책상을 마련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새롭고 큰 북카페보다도, 입구의 작은 복도공간에 머무는 것이 더 좋았다. 북카페에 들어가려면 몇 계단을 올라야하는데 거기 앉아 있으면 고향집 사랑방에 앉아있는 것처럼 아늑하고 좋았다.

그 작고 아담한 공간의 벽면에 누구라도 읽으면 새길만한 인상적인 글귀를 하나 걸어두고 싶었다. 한참 생각한 끝에 고른 글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었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오는 시구절인데, ‘하늘이 세상을 낼 적에 가장 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이니’하는 그 구절이 참 좋았다. 누구나 세상에 올 때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는 그 시의 다음 구절을 읽으면, 우리 인간의 존재와 운명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오랜 사색의 여운을 주어 좋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시어 속에는 우리 학생들이 가끔은 이곳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고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해갔으면 하는 소망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른 아침이나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그 복도를 지나다가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을 보거나, 스쳐지나가는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외높쓸에 있을게’하는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학생들이 모두 학교하고 난 뒤, 그 독서공간에 가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고 써 있는 글자 아래에 앉아 있으면 한없이 아늑하고 쓸쓸해서 좋았다. 무례한 학생을 만난 날이나 생각 없이 던진 동료의 말이 상처가 되어 혼자 있고 싶은 때마다 그 자리에 가 앉아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예전에 모셨던 퇴임한 교장선생님께서 올해 ‘퀘렌시아(La Querencia)’라는 제목의 책을 내셨다. 그 책에서 ‘사람은 저마다의 퀘렌시아가 있다’는 내용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스페인 투우장 어딘가에는 소 자신이 투우사와 싸우는 동안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어딘가를 살펴두었다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에 자신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해둔 곳이 있다고 한다.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장소가 아니라 소가 스스로 찾아낸 장소이다. 소에게는 투우사와 목숨 걸고 싸우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쉬며 힘을 모으고 다시 싸우러나가야만 하는 자리이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힘들고 지칠 때 쉬면서 기운을 얻고 자신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장소인 퀘렌시아. 나에게 학교에서 나만의 퀘렌시아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글자 아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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