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교수, 본지 연재 글 엮은 ‘불편한 시선’ 출간
누드·혐오 등 10개 키워드로 여성과 미술 관계 파헤쳐
시대적 한계 뛰어넘은 여성미술가들의 작품 ‘한눈에’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미술관이나 미술책에는 유독 여성 누드를 그린 작품이 많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고전 명화 중에도 여성 누드가 넘쳐나고, 심지어 그리스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벌거벗은 채 그려진다.

여성의 시선에서 미술의 역사와 고전으로 내려오는 그림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이미 익숙해져 간과했던 의문을 다시 끄집어낸 책 ‘불편한 시선’(아날로그/1만9천원·사진)이 출간됐다. 저자는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이윤희(51)씨다.

이 책의 내용은 본지에서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로 기획,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것으로 미술 역사에서 여성이 표현되는 방식을 지적한다. 또 여성 미술가가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와 더불어 이를 넘어서고자 노력했던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부터 중세의 교회 건축 조각,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뿐만 아니라 근현대 작가들의 회화, 퍼포먼스 작품까지 고루 담아내, 미술 영역에서 여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리고 여성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역전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글은 미술관과 교과서에는 왜 그리도 여성의 누드를 그린 그림이 많을까? 왜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위대한 여성 미술가의 이름을 선뜻 떠올릴 수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그림의 세부 주제로 파고 들어가면 의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신화와 종교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에서 여성은 왜 언제나 남성을 파멸시키는 존재로 그려질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은 왜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미술의 주제가 되었을까? 성모 마리아나 에로스를 대동한 비너스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은 곧잘 그려지는데, 왜 임신과 출산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는 것일까? 남성 노인은 기품있게 그려지는데, 왜 늙은 여성은 늘 추악하게 그려질까?

여성의 눈으로 보면 거북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지만, 이러한 작품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기 일쑤다.

여성은 이러한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작품의 내용과 표현 방식에 반론과 의문을 제기하기가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열 개의 키워드로 압축해 선보인다.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에서 길이 회자되는 작품을 살펴보며,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여성의 모습과 역사적으로 미술계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그리고 현대 여성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역전시키고 있는지, 여성과 미술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저자는 “이 질문들은 나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물어왔던 것들이다. 우리를 둘러싼 시각 이미지들, 그러니까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이미지들을 바라보는 것도 비슷한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세상을 다 불편해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느냐고? 아니, 나는 오히려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저자는 미술의 역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주 관객층과 이를 제작하는 미술가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미술품 시장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작품이 남성 관객 취향과 선호를 따라 제작되었고, 이에 여성 누드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성 누드와 여성 누드 작품의 연출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한다. 남성의 누드상은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제작되었지만, 여성의 누드상은 대부분 옷을 걸친 채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시선에 부끄러워하고 있는 모습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누드 조각상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누드 작품을 비교하고, 현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이러한 관객의 ‘시선’을 어떻게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닌 작품을 제작했는지까지 고루 살핀다. 특히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풍부하게 수록하여, 역사적으로 늘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모습을 현대 여성 미술가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남성의 가부장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여성 일반에 대한 공포는 상대적으로 남성을 희생자로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도상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제공했다. 미술사에서 남성과 여성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살해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주제는 당대 현실의 맥락 속에서 남성 일반을 파괴할 듯한 팜므파탈 이미지와 결합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썼다.

뛰어난 실력으로 큰 명성을 얻은 뒤에도 여성 미술가들은 작품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지를 입고 외출해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던 로자 보뇌르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과거의 여성 미술가에 비하면 그 기회가 확대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성들은 ‘집사람’으로서 노동을 하며 동시에 작품 활동을 해 나가야 하는 이중적 고충을 겪는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여자의 집’, 박영숙의 ‘미친년들’과 같은 작품을 보면 여성 미술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어 반전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자는 박영숙의 작품 속에는 이 반전이 넘쳐 난다며 “미친년이란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귀찮은 일을 당하게 될 것만 같은 여성들, 폐쇄적이고 관료화된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마땅히 따라야 하는 질서에 의문을 품고, 자기 의견을 기필코 관철시키고, 세계의 비밀에 호기심을 갖는 여성들, 그러한 여성들이 ‘미친년’이 아닐까. 적어도 박영숙의 작품에서는 말이다”라고 피력했다.

저자는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뿐 아니라 세상만사에 불편한 시선을 가진 자의 기록이다. 고전이 된 작품들을 놓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읽힐 수밖에 없다고 후벼 파고, 동시대 또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며 “이것이 이분법적 편 가르기의 글쓰기라고 여기는 독자가 많지 않기를, 인간으로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성별은 이렇게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흥미롭게 여겨주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저자 이윤희씨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미술의 역사, 미술의 언어를 공부했다. 대전시립미술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청주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굵직한 전시를 기획해왔으며 현재는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 ‘포토몽타주’, ‘바디스케이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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