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621년 춘추시대, 진(秦)나라는 본래 서쪽 오랑캐라 하여 중원의 나라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목공(穆公)이 즉위하여 천 리에 이르는 서융 여러 나라를 합병하여 서쪽 우두머리에 올랐다. 그러자 나라의 위상이 높아져 처음으로 중원의 제후들과 대등한 관계를 정립했다.

이후 목공은 동쪽으로 진출하고자 가까운 양(梁)나라를 공격하기로 했다. 양나라는 진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크게 두려웠다. 그래서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서둘러 성을 높이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을 쌓는 일이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백성들은 양나라 군주를 비방하고 모두 달아나버렸다.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양나라 성문을 지키는 병사도 없었고 거리에 백성들도 없었다. 진나라는 아주 쉽게 양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다. 목공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양나라는 어찌하여 나라가 망한 것인가?”

그러자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양나라는 궤멸(潰滅)한 것입니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잔혹하게 대했으니 백성들이 군주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뜻입니다. 군주로서는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양나라 부근에 작은 추(鄒)나라가 있었다. 목공이 군대를 이끌고 추나라를 쳐들어갔다. 추나라 신하들이 항전했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여 결국은 항복하고 말았다. 목공이 추나라 군주를 사로잡아 물었다.

“추나라는 어찌하여 이토록 빨리 나라가 망한 것인가?”

추나라 군주가 대답하였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우리 추나라 신하 3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말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싸울 생각을 않고 모두 물러나 구경만 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은 백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라 법에 따라 백성들을 방관한 죄로 처리하자니 그 수가 너무 많고, 그냥 두자니 신하들의 죽음이 헛되고 이런 상황이었으니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자 목공이 추나라 군주를 꾸짖으며 말했다.

“이전에 추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때 들판과 거리에 굶어 죽은 백성이 사방으로 널려있었다.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 추나라 공실 창고에는 양식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찌 군주가 되어 그것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은 것이냐? 군주와 신하들은 날마다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게 지내면서 백성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몰랐단 말이냐? 백성들에게 그렇게 악행을 저질렀으니 백성들이 그때의 일을 이제 앙갚음한 것이다.”

이 말에 추나라 군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좌씨전(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악인악과(惡因惡果)란 악한 짓을 했으니 악한 결과가 생겼다는 뜻이다.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 반드시 그보다 더한 앙갚음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 속담에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백성은 의식주가 편하면 군주를 칭송하고, 의식주가 고통스러우면 군주를 원망하는 법이다.                                                                                                                              aionet@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