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가끔 오르는 야트막한 비탈길 밭모퉁이에 무 장다리꽃이 한창이다. 연초록 대궁 위에 엷은 보랏빛 꽃잎에는 열십자 실핏줄 무늬로 곱게 꽃을 피우고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어떤 꽃보다 소박하고 예쁘다.

어릴 적 고향 대문간을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던 텃밭 한 귀퉁이에 연보랏빛 장다리무꽃이 눈부시게 피어있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하지 않고 내버려 둔 무가 겨울 땅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따뜻한 봄이 오면 장다리를 돋우고 꽃을 피웠다.

혹독한 한파와 싸우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그 나약한 뿌리는 본래 목적인 종족 보존 본능으로 모든 양분을 꽃을 피우는데 쏟아부어 씨앗을 맺는다. 장다리꽃 뿌리는 구불텅하게 생긴 데다가 턱없이 짧고 얕게 박힌 탓에 작은 바람에도 꽃대가 쉽게 널브러진다. 가느다란 뿌리는 숨을 다해 씨방이 틈 실할 때까지 결코 썩거나 병들지 않는다.

고운 빛 여린 꽃은 소중한 자식을 잉태하고 건강하게 키워낸 뒤 씨앗이 익어갈 무렵이면 잎은 거칠어지고 씨방이 든 껍질은 늙어가는 어머니의 뱃가죽처럼 쭈글쭈글하게 말라간다. 씨방이 잘 맺히면 뿌리에는 바람이 들고 잎사귀는 노랗게 시들어 죽는다. 무 장다리꽃을 볼 때마다 자식에게 일생을 쏟아붓는 어머님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요즈음은 봄철이 되면 유채꽃이 명물이 되지만, 예전에는 노랑나비 흰나비가 군무를 이루며 날아다녔던 장다리 꽃밭이 명물이었다. 무장다리 꽃대에 물이 올라 제법 몸통이 굵어질 때면 아이들은 삘기와 찔레순과 함께 이 장다리 순을 부지런히 따먹었다. 무장다리 순은 매운 듯 비릿하고 풋내가 감돌았지만, 목이 마른 아이들에게 수분을 섭취하기에 충분했다. 고향은 아득한 산 너머로 멀기만 하고 그때의 시간은 더 아득하여 구름 너머로 숨어버리지만, 고향의 그리움을 담아 피는 무 장다리꽃은 작은 추억을 소환해 미소 짓게 한다.

어느 말 못 할 그리움이 꽃대를 밀어 올렸을까, 한동안 돌아보지 않은 내 안이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다. 길가 한 귀퉁이에서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무장하고 내일을 위해 꽃을 피우는 장다리꽃을 보면 생명이 무엇이며, 진정한 삶과 의무를 다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나이 되도록 늘 변방에서 어디 가든 깊이 뿌리박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중년을 살아왔다. 내 생각, 내 목소리, 내 자리 없이 그저 그렇게 희미한 삶을 살다 보니 꽃을 피워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내가 밥알만 한 꽃잎 넉 장인 보랏빛 장다리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장미도 백합도 아닌 장다리꽃으로 토종 씨앗을 품게 된 것은 드러내지 않은 가능성이 찾아오고부터였다.

꽃이 영글면 또 한세상이 펼쳐지듯, 내가 피운 꽃도 영글어 한세상을 펼쳐낼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숭고함에 한시도 허투루 살아갈 수가 없었다.

뒤로 던져진 가을 무가 무녀리 씨도리로 움트기 위해 더 깊이 더 야물게 살아야만 했던 시간은 거칠고 딱딱한 땅을 뚫고 나와 제 나름의 모양과 빛깔을 가지고 소박하고 수수하게 피어나는 장다리꽃 삶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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