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란 말은 너무 잔인한 말일까? 죽음이 피상적으로만 느껴지는데 죽음을 생각해야 할 나이임을 자각했을 때, 내일 바로 죽음의 사신이 데리러 온다면 망설임 없이 미련도 없이 따라나설 수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안나마리아 고치의 셈세하고 풍성한 묘사의 글과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를 품은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으로 ‘할머니의 팡도르’를 만나보자.

환상적이고 달콤한 팡도르란 소재에 어떻게 죽음이란 주제를 담아낼까? 할머니의 디저트 향기는 빨강, 겨울눈과 물안개의 하양 그리고 사신과 겨울나무의 검정 세 가지로 대표되는 색들은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에 녹아든다.

할머니는 강으로 둘러싸인 산골 외딴집에서 혼자 살며 고단한 날들을 보낸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소리 없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세월은 흘러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투성이가 된다. 할머니는 나이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할머니는 죽음이 나를 잊어버린 거라며 빵 반죽을 한다. 겨울이 오자 눈에 덮여 둥글고 흰 지붕이 생겨나고 밤이 긴 날이 이어지며 마을에는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다. 외딴집에도 온갖 향기가 가득하고 커다란 솥이 걸리고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기록된 적이 없고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할머니만의 비법으로. 창밖에는 겨울바람이 매섭고 할머니가 빵 반죽에 여념이 없을 때 하얀 눈길 위로 검은색 그림자가 다가왔으니 바로 할머니를 잊지 않은 죽음의 사신이다.

사신은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다가 빠져나온 건포도 조각의 향에 정신이 혼미해져 또 일주일을 기다려준다. 분을 삭이며 돌아갔던 사신이 사흘 만에 다시 외딴집을 찾아 창으로 들여다보니 할머니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며 빵을 만들어 식탁 위에 놓고 하얀 설탕가루를 뿌린다. 문을 두드리자 할머니가 다정히 맞아주고 사신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환대에 자루를 벌린 채 당황한다.

약속대로 맛을 보여주겠다며 할머니를 따라서 맛본 빵은 온갖 풍미가 가득한 생의 맛이다. 고소한 아몬드 맛까지 보고 가자고 이끄는 사신에게 할머니는 구운 아몬드를 누가에 넣어야 하는데 누가 반죽이 바삭해지려면 하루가 더 걸리니 딱 하루만 더 가다리라고 한다. 다음날 사신은 온통 누가 생각만 하며 얼굴마저 상기되어 외딴집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사신을 반겨주고 검정 망토를 벗게 하고 색색의 숄로 갈아 입히고 우아한 여인으로 보이게 한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과 과자들로 채워져 있고 아이들은 할머니의 새 친구를 맞아준다.

숙성시킨 반죽 위에 버터를 바르고 빵틀에 넣으면 별 모양이 되는데 마지막으로 화덕에 구우면 팡도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신은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이라며 집을 나온다.

마침내 크리스마스가 되어 사신은 할머니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할머니의 맛난 빵과 과자에 빠져든다. 눈을 뜨자 사신의 앞에 할머니가 핫쵸코를 내밀고 임무 수행을 난감해하는 사신에게 가자고 말한다. 찰다 속에 레시피를 숨겨 두었으니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라며 이제 갈 시간이라고. 둘은 외딴집을 나서 솜사탕처럼 가벼워져 강 너머로 사라진다.

죽음의 사신조차 설득당한 할머니의 팡도르 같은 결과물이 있다면 좋을까. 이생의 삶을 마무리할 때 망설임 없이 미련도 없이 사신과 함께 떠날 수 있도록 삶의 고삐를 바투 잡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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