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 유월과 칠월의 단상(斷想)
[김병연 칼럼] 유월과 칠월의 단상(斷想)
  • 충청매일
  • 승인 2022.06.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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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누구나 인생의 최초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1950년 7월 중순이니까 내 생후 3년6개월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매년 칠월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 최초기억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호롱불’과 ‘돼지새끼들’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이끌고 동네 뒷산 골짜기에 굴을 파고 피신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버지는 괭이로 굴속의 벽을 파서 ‘호롱불’을 밝혔다. 지금도 가끔 석유 등잔 호롱불에 밝게 비춘 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송아지만한 큰 암퇘지를 길렀는데, 새끼를 열세 마리나 출산해서 아들부자에 돼지까지 부자라서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6·25가 발발하자 우리는 할 수 없이 돼지우리를 활짝 열어 놓고 집에 놔둔 채 뒷 골짝으로 피난갔다.

해거름만 되면 나는 형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와서 돼지구시(돼지밥통)에 물을 붓고 뒹겨(돼지먹이)를 타 주었다. 어미돼지는 마루 밑에서 먹을 생각도 않는다.

6·25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까지도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한다. 6·25는 2차 대전 후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군인들이 참전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다. 즉 자유 수호를 위해 24개국의 연합군 60여만명이 참전해 4만여명이 전사했다.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100여만 명이 참전하여 30여만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북침’이냐 ‘남침’인가? 북한이 남쪽을 침범한 ‘남침’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만약 중국이 참전 안했다면 오늘과 같은 분단은 없을 것이다. 수상 주은래만은 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논리에 따라 ‘조선이 통일되면 중국이 위험하다’라며 팽덕회를 사령관으로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에 모택동의 장남 모안영이 소련군 통역장교로 참전한다.

1950년 11월 25일 오전 평양부군 회창군에 중공군사령관 막사가 미군의 공습으로 전소되었다. 그때 팽덕회와 작전참모 홍학지는 지하벙커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장기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모안영은 계란 볶음밥을 조리하다가 미군 포격소리에 탁자 밑에 숨었다가 막사가 전소하는 바람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팽덕회 사령관이 놀라서 미쳐 날뛰며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는 것을 홍학지가 몸으로 덮쳐 막음으로써 그를 살렸다고 한다. 28살의 모안영은 신혼 1년도 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모택동)는 망연자실해 피우던 담뱃불이 손가락까지 타들어 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비참한 것이 전쟁이다.

닷새 전은 6·25전쟁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TV방송 등 어디에도 6·25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 고금을 통해 위대한 국가들은 모두 역사를 중시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 더 길게 되돌아 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법이다.

매년 칠월이 되면 내 생애의 최초의 기억이 생각난다. 6·25 전쟁으로 야기된 ‘호롱불’과 ‘돼지새끼들’이다. 잊혀서는 안 될 6·25가 잊혀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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