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아주 옛날 요동 서쪽에 고죽국(孤竹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왕은 장남인 백이(伯夷)보다는 셋째인 숙제(叔齊)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백이는 성품이 온화하고 착해서 사람들에게 싫은 말을 하지 못했다. 반면에 숙제는 판단력이 뛰어나 옳고 그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별안간 죽었다. 신하들은 당연히 장남인 백이가 왕위를 승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백이는 아버님이 숙제에게 물려주려 했다며 거부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숙제도 왕위를 원치 않아서 백이를 따라나섰다. 어쩔 수 없이 둘째 중자(仲子)가 왕위에 올랐다.

나라를 떠난 백이와 숙제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주나라 서백창(西伯昌)이 덕을 베푸는 군주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보니 서백창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실은 채 상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러 나서고 있었다.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아뢰었다.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을 어찌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상나라의 신하 된 자로서 상나라 왕을 죽이려 하다니, 이를 어찌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무왕의 호위무사들이 달려 나와 백이와 숙제에게 칼을 들이댔다. 그때 무왕의 태사 강태공(太公)이 격하게 소리쳤다.

“칼을 거두어라! 이분들은 의인(義人)이시다”

하고는 백이와 숙제를 부축해 돌려보냈다. 이후 무왕은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周)나라 천하를 세웠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무력을 쓰는 주나라를 치욕스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곳에서 고사리와 나물을 캐서 먹으며 살다 생을 마쳤다. 후세에 공자(孔子)는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 없이 살았기 때문에 이는 인(仁)을 구하고 인을 얻은 것이니 무엇을 원망했겠는가?”

하지만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견해를 달리했다.

“백이와 숙제가 어찌 원망이 없었겠나? 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해서 착한 사람을 돕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걸까? 공자의 제자 안연은 학문이 뛰어났음에도 가난하여 요절하고 말았다. 춘추시대의 도척은 천하를 도적질하고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포악무도한 짓을 하고도 끝내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또 죄를 짓고 법을 위반하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고 자자손손 부귀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공평하고 바른 곳만 가는 이들이 재앙을 당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것을 하늘의 도라고 한다면, 이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도유승강(道有升降)이란 천도에는 융성과 쇠망이 같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은 융성한 길을 만나면 누구나 흥하는 것이고 쇠락하는 길을 만나면 누구나 망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뜻도 시대와 상황이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우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욕심 많은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명분 때문에 목숨을 잃고, 서민들은 그날그날 생계에 매달리다 목숨을 잃는다. 그러니 이왕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으며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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