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338년 춘추전국시대, 상앙(商)은 진(秦)나라의 정치가이다. 본래 위(衛)나라 출신이었으나 서자 신분이라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진나라로 망명하였다. 진나라 효공에게 부국강병을 유세하여 신임을 얻었다. 이후 벼슬에 올라 여러 방면에 개혁을 단행하여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웠다. 이 공로로 재상에 올라 10년간 엄격한 법치주의 정치를 펼쳤다.

이때 왕족 출신들의 오래도록 누려온 세습 특권을 과감히 폐지하고 공로에 따라 벼슬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왕의 권한은 커졌으나 왕족들에게는 비난을 받아 원한을 샀다. 또 연좌법과 토지 개혁을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나라의 세수는 크게 늘었으나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하루는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있었다. 상앙이 태자의 처벌을 주장했다.

“왕실에서 법을 우습게 여긴다면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법이 분명하고 공정한 것을 보여주어야 백성들이 왕의 명령에 따를 겁니다.”

효공이 이를 받아들여 처벌에 동의했다. 하지만 태자는 효공의 뒤를 이어 왕에 오를 신분이니 차마 형벌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태자를 보좌하는 신하 공자건을 처형하였고, 태자의 스승인 공손가에게도 책임을 물어 그의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형벌을 두려워하여 모두 새 법령을 따르게 되었다. 법이 잘 지켜지자 효공은 매우 흡족해했다.

얼마 후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혜왕(惠王)이다. 이때를 기회로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왕족들이 상앙을 모함하였다.

“상앙이 권력을 이용하여 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혜왕은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 자신의 신하에게 형벌을 내린 상앙을 크게 증오하고 있었다. 선대에 세운 상앙의 공로는 조금도 참작되지 않았다. 혜왕이 명했다.

“당장에 상앙을 잡아 오너라. 반란을 꾀하였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큰지 법령에 따라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

상앙은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도망쳤다. 위나라로 달아나기 위해 국경 근처에 이르렀을 때 이미 밤이 되었다. 할 수 없이 하룻밤 묵으려고 어느 객사에 이르렀다. 그러자 객사 주인이 말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이 이 객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를 어기면 상앙이 제정한 연좌법에 걸려 저도 함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상앙은 어느 곳에도 객사를 구할 수 없었다. 거리에 주저앉아 크게 탄식하였다.

“아, 내가 만든 법에 내가 당하는구나!”

상앙은 결국 체포되어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 죽었다. 이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작법자폐(作法自斃)란 자신이 만든 법에 자신이 불행을 당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한 일로 인하여 자기가 고난을 받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요즘은 대통령부터 동네 파출소 순경까지 법대로 하라는 말이 참 유행이다. 그런데 그 법이 우리 편과 남의 편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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