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조선의 궁술’은 참 어려운 책입니다. 특히 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조선의 궁술’ 전체를 쓴 사람은 동운 이중화라는 한글학자였습니다. 그런데 한글학자가 활쏘기의 역사를 비롯하여 인문학의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쓸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활쏘기의 핵심 영역인 ‘사법’ 부분이 그렇습니다. ‘조선의 궁술’에는 사법에 관한 아주 짤막한 기록이 있습니다. 불과 서너 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요즘 흔한 A4용지로 정리하면 3쪽이 채 안 되는 분량입니다.

이 부분을 누가 썼을까? 이게 큰 의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성낙인 옹은 자신의 선친 성문영 사두가 썼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그대로 다 믿을 수 없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성 옹의 유품 중에 임창번 조선궁도회 2대 회장이 쓴 조사가 있습니다. 성 공이 입산했을 때 읽은 조사입니다. 거기에 성문영 공이 궁술책을 저술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당사자의 가족이 아닌 사람이 언급한 중요한 글입니다.

일단 그 글을 쓴 사람이 확인되면 『조선의 궁술』 사법에 묘사된 실제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의 궁체를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성낙인 옹이 ‘조선의 궁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즉 아버지의 활로 집궁을 했고 아버지와 함께 활을 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궁술』에 의문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이 어려운 책임은, 그 속의 사법 부분을, 묘사된 그 내용만 가지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묘사된 분량과 서술 내용만으로는 궁체 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기에는 힘듭니다. 틀린 부분도 있고 알면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그런 애매모호한 부분은 글을 쓴 당사자에게 물어야 하는 법입니다. 자신이 주먹구구로 배운 사법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원전 해석에서 최악의 방법입니다. 그런 식이면 양궁 선수들도 ‘조선의 궁술’을 참고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의 궁술’을 읽고 해석하는 활량들은 거의 이런 식입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구석이든 매끄럽게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한 해석은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갑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성낙인 옹의 존재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선의 궁술’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때 전화로 묻거나 만나서 여쭈면 그 즉시 답이 나왔습니다. 성낙인 옹의 말씀이 아니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장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확인하면서 어떤 때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선의 궁술’은,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뒤 활 배우러 오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는 점점 더 확실한 믿음으로 굳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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