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것으로 여겼지만 요즘은 어른들도 부쩍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얼마 전에 이수지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 그렇다면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여백의 미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과 나의 삶이 만나서 작가가 만든 세상보다 더 넓고 깊게 확장된다. 또한 여기에 상상력이 더해져 여백을 채워 나간다.

나 역시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근래에 만난 작품이 있다. 흰 바탕에 ‘핑’이라고 쓴 빨간 글씨가 눈에 쏙 들어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니 카스티요’의 작품으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겪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재치 있는 그림과 이야기로 쉽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타인과 소통하는 모습을 ‘핑’, ‘퐁’ 소리를 내며 공을 주고받는 탁구(ping-pong)에 비유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누구나 한 번쯤 핑퐁 게임의 경험이 있을 텐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공을 넘기느냐의 문제이다.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릴지, 아니면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릴지 고민하고 선택하여 ‘핑’을 하게 된다. 상대방이 공을 잘 받아치든, 그러지 못하든 그것은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몫이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매 순간마다 친구를 향해, 세상을 향해 내 마음을 ‘핑’한다. 그리고 어떤 ‘퐁’이 돌아올지 긴장 속에서 숨죽여 기다린다. 하지만 ‘퐁’은 내가 예상하는 모습,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다. 핑퐁 게임이 항상 즐겁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무리 환한 웃음으로 ‘핑’을 보내더라도 상대방의 ‘퐁’은 나의 웃음에 비해 강도가 낮을 수도 있고, 언짢음이나 두려움일 수도 있고, 짜증이나 무반응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거나 오해하면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상대방이 공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보내는 자세를 다잡거나 잘 받아치는 연습도 하게 된다. 그러나 ‘핑’과 ‘퐁’의 모습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핑’과 ‘퐁’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게 되지만,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도 결국 관계에서의 소통을 통해 위로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의 ‘핑’이 상대방에게는 ‘퐁’이 되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것도 결코 나뿐이 아니다. 무심코 내뱉은 나의 ‘핑’이 상대방에게는 가시 돋친 ‘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진심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핑’과 ‘퐁’의 관계가 정말 즐겁고 열정적으로 시도해야 하는 진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상처받는다. 이런 어른들에게 그림책은 위로와 공감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도, 노력한 일의 대가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비록 지치고 아프더라도 나의 ‘핑’을 당신에게 보낸다. 과연 당신은 나에게 어떤 ‘퐁’을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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