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입에 맞는 떡이 없다. 여름이 다가오니 새 옷을 장만할까 싶어 백화점을 찾았다. 이것저것 입어 봐도 영 맵시가 나지 않는다. 쭉쭉 빵빵 늘씬한 다리면 얼마나 좋을까. 마네킹이 입은 7부 바지는 내가 입으면 발목까지 온다.

나이가 들수록 어깨에 살만 잔뜩 붙었다. 헐렁하게 입으면 편할 텐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푸짐하기만 하다. 나의 몸매에 대한 착각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결국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서글픔만 안은 채 돌아섰다.

점점 매사에 자신이 없고 주눅이 들 때가 많다. 어느새 불룩해진 아랫배를 이제 더는 가릴 재간이 없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소용없다. 살이 붙어 떡 벌어진 어깨를 감추려 자꾸 움츠리게 된다.

고등학생 때였다. 길에서 우연히 중학생 후배를 보게 되었다. 그는 호떡을 먹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고개를 숙인 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먹는 데만 열중이었다. 집이 코앞인데 얼마나 허기졌으면…. 길에서 먹는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잔뜩 움츠린 어깨 때문인지 먹는 모습이 퍽이나 측은해 보였다.

한 손에 가방을 들고 트렌치코트 자락을 날리며 햄버거를 먹는 영화 속 서양 사람은 그렇게 측은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빠른 걸음으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입을 쩌억 벌리고 당당하게 먹는 모습은 오히려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길거리에서 먹는 모습은 같은데 호떡을 먹는 사람은 불쌍해 보이고 햄버거를 먹는 사람은 왜 멋있어 보였을까.

이 문제로 나는 꽤 오랜 시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호떡과 햄버거의 메뉴 차이는 분명 아니었다. 문화 차이 때문일까.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다니면 안 된다고 배워왔다. 당연히 후배는 규범을 어기고 있었기에 본의 아니게 눈치를 보았을 것이고 햄버거를 먹는 서양 사람은 바쁜 시간을 쪼개 틈새 시간에 식사를 때우는 중이었으니 흉이 될 리가 없다.

맞다. 사람은 당당해야 아름답다. 반지하인 우리 집은 볕이 잘 들어서 참 따뜻하니 놀러 오라고,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젊은 새댁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부족한 듯해도 부끄럽다 여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름답다. 많이 알지 못해도 알고 있는 만큼은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할 때도 주저주저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선뜻 나의 생각을 먼저 표현하는 사람이 당당해 보여서 좋다. 자신의 결점은, 반지하에 사는 것은, 나의 생각을 먼저 말하는 것은 흉이 아니쟎는가.

나의 어깨가 넓어서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고 움츠러들지 말아야겠다. 아랫배가 나왔다고 애써 힘주지 말자.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죄는 아닐 것이다. 비록 덧니라도 활짝 웃어야 예쁘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먹는 것도 죄가 될 수는 없다.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먹어보자. 당당한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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