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590년 춘추시대, 초나라는 대륙의 남쪽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국가이다. 초기에는 남방의 오랑캐라 해서 천대를 받았으나, 장왕(莊王) 무렵에 중원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천하 강자로 떠올랐다.

장왕 무렵에 초나라 법에는 궁궐 묘문(廟門)을 통과할 때에는 왕을 제외하고 누구라도 수레를 타고 지날 수 없었다. 묘문은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곳이라 어느 관문보다 엄숙하고 경비가 철저한 곳이었다. 그러니 묘문을 지나려면 누구나 정숙하게 걸어서 가야 했다.

하루는 장왕이 밖에 있는 태자를 급히 불렀다. 그런데 그날 마침 비가 많이 와서 거리에 흙탕물이 가득 고였다. 태자가 탄 수레가 묘문 앞에서 멈추었다. 태자가 내리고자 했으나 흙탕물이 들어차 어쩔 수 없이 수레를 타고 묘문을 넘어섰다. 그러자 수문장이 엄히 경고하였다.

“아무리 태자라 해도 수레를 타고 이곳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하고는 몽둥이를 들어 태자의 수레를 끄는 말을 때려 넘어뜨리고 수레를 부수었다. 그러자 태자가 너무도 놀라 수문장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내게 행패를 부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수문장은 태자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자의 수레를 아주 박살을 내고 말았다. 이는 수레를 타고 묘문을 지나는 경우 말과 수레를 부수는 것이 원칙이었다. 태자는 분을 참지 못하여 장왕에게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소자가 길에 흙탕물이 가득 고여 어쩔 수 없이 수레를 타고 묘문을 넘었습니다. 그러자 수문장이 불법이라면서 제 수레와 말을 때려 부수었습니다. 당장 그자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장왕이 그 말을 듣자 태자에게 말했다.

“너는 이후에 군주의 자리에 오르거든 반드시 수문장과 같은 이를 가까이 두어야 한다.”

하고는 이어 태자를 엄히 꾸짖었다.

“수문장은 군주의 명을 받들어 행하는 자이다. 그러니 태자라고 해도 법을 어긴 것이니 원칙대로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명을 받아 충실히 행하는 자를 벌하려 하느냐? 태자는 앞으로 본분을 지켜 다시는 법을 어기지 말라.”

장왕은 이어 수문장을 불러 칭찬하였고 직위를 올려주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 그러자 관리들이 모두 장왕을 우러러보았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고사이다.

다반향초(茶半香初)란 차를 마신 지 반나절이 지났으나 그 향은 여전히 처음과 같다는 뜻이다. 원칙과 태도가 늘 한결같은 사람을 높이 평가할 때 쓰이는 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법은 적용 대상에서 예외가 없고 누구에게나 엄격하고 엄중하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부하들의 범죄에는 법의 적용을 예외로 하고 백성에게만 엄벌을 강조한다. 법이 원칙을 잃으면 원망을 듣게 된다. 원망이 커지면 백성들이 소리칠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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